아무도 관심없을 신해철에 대한 잡감 오늘 날씨

글이라는 것도 쓸 수록 에너지가 딸리는 것이라, 최근에는 웬만하면 소설 외에 다른 글에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탓도 있고. 하지만 나는 이따가 신해철의 장례식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은 시간이 조금 남으니까 A4용지 한두 장 정도의 에너지는 소모해도 괜찮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의 중학생에게 세상은 부조리해 보였다. 뭐 2000년대 말반의 중학생이든 1990년대의 중학생이든 1960년대의 중학생이든 하여간 중학생에게는 원래 세상이 부조리해 보이는 거 같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그랬다. 과거 그 시절을 추억하는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금 덧붙이자면, 2014년의 중학생보다 2000년대 초반의 중학생은 조금 더 '신나게'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2000년대 초반의 딴지일보를 기억한다. 남로당에서 파는 '명랑완구'들을 숨죽이며 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최근 레드홀릭스라는 사이트가 자꾸 내 피드에 뜨던데, 볼 때마다 그 당시의 남로당이 생각나서 괜히 친숙하게 느껴지더라) 안티 조선 운동이 있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행진하는 영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모든 층위를 같이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세계가 중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었다.
 
김대중 정권이었다. 1999년에는 전교조가 합법화되었고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했고 선거에 나왔다. 김대중은 일본 문화를 전면 개방했다. 나는 X-Japan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테이프를 사면서 감격에 겨워했다. 늘어나도록 들었다. 안양 1번가 지하상가에서 클램프의 일러스트 엽서들을 사던 와중에 신해철도 있었고 고스트스테이션도 있었다.
 
신해철을 처음 인지했던 건 초등학교 때 가요 프로그램에 나온 신해철이 에반게리온의 제레 같은 복장을 하고 가면을 깨부수면서 라젠카 세이브어스를 부르던 장면이었다. 지금 보면 저의 손발을 구해주세요 싶겠지만 그때는 매료됐었다. 나는 어차피 나보다 윗세대들이 신해철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나는 2000년대의 신해철을 기억한다. 어쩌다가 어느 새벽 두 시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번째로 신해철을 인지했던 건 어느 새벽 두 시였다. 윈앰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고, cafe24로 채팅을 하던 시절이었다.
 
신해철이 소개시켜주던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워했고, 노래방에 가면 신해철 노래를 불렀고(주여, 제 친구들이 지누션의 A-Yo를 부르는데 제가 옆에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부르며 제 노래에 감격해 눈물을 그렁거렸습니다. 시발…), 신해철을 마왕이라고 부르면서 그게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중요했던 건 좀 다른 것들이었다.
 
학원에서 내 친구들은 학원 화장실에 제대로 숨기지 않은 생리대가 버려져 있다고 누군지 모를 그 '여자도 아닌' 애를 욕했다. 남자애들이랑 잘 노는 여자애들 뒤에서는 걸레라고 욕했다. 하복 안에 색깔 있는 브래지어를 하고 온 여자애가 천박하다고 욕했다. 일진 여자애 한 명이 임신으로 퇴학한 거라는 소문이 퍼졌을 때는 너도 나도 신이 나서 정숙하지 못한 그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브리트니의 I'm a slave 4 u가 나왔을 때는 소곤소곤 그 뮤직비디오 봤어? 장난 아니더라. 완전 그냥 실제로 하는 거 아냐? 물론 그리고 나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난했다.
 
평범한 사회화의 과정이었다. 네다섯 살 여자아이들이 공주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듯이, 열네다섯 살 여자아이들은 '소녀'의 룰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텔레비전에서는 베이비복스가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같은 소리를 했고 소녀들은 장기자랑에 나가서 춤을 췄다. 우리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나는 내가 이전의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들보다 훨씬 격동적인 삶을 살 거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그 즈음에 신해철이 있었다.
 
새벽 2시마다 '나는 너의 숨겨진 어두운 꿈을 지배(오버액션맨!)'한다던 그 '마왕'은 교복 페티시를 얘기하고 영숙이와의 섹스를 얘기했다. 꼰대질하는 어른들에 대해서 씹어뱉었고 별 체계도 없이 반권위적인 말들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반권위는 왕따 오타쿠 중학교 2학년이 설레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서로서 존재하는, 아니 직관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불신. 신해철은 그 불신이 용인되는 범주와 용인되지 않는 범주를 체계 없이 오가면서 사람들에게 '반권위자'로서의 자부심을 제공했다.
 
애들을 때리면 안 돼,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돼, 꼰대들은 나빠,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살 권리가 있어, 절대로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야.
 
딱히 신해철은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뭘 주창한 것도 아니다. 사회운동을 만든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가 실제로 자기가 얘기하던 방식의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도 지금에 와서는 나한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나는 선출되지 않은 권위를 의심하는 인간으로 자라났고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왕’을 비웃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짜장면에 계란을 넣자면서 중국집에 전화를 돌리는 쓸데없는 일도 있었고 홍대에 모여 앉아서 조리퐁을 세는 정신나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는 쓸데없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다르게 말하면 집단의 힘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시대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정치적이기에 나는 신해철이 딱히 ‘정치적’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시대 위에 신해철이 타고 있었다. 신해철과 함께 뭘 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 다시 신해철을 떠올렸을 때 손발이 오그라붙는 건 반권위를 말하는 주제에 유치하게도 가오가 쩔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오라는 게 참 힘든 게, 대부분 진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힘든 것처럼. 인간의 맨얼굴은 사실 꽤 과장되어 있는 면도 있는데, 이제 우리는 그 과장된 얼굴을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럽다. 나는 얼마 전에는 노래방에서 Here I stand for you를 부르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는다니 세상에! 과장된 맨얼굴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은 가끔 엄청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신해철은 분명히 유희적이었지만 동시에 자기 진정성을 오버해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큰 나머지 이것저것 무리수 투성이였다. 덕분에 신해철을 좋아하던 나까지 무리수 투성이였다.
 
최근 단골 우동집 아저씨에게 블루 하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신해철을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나이프를 들고 달렸어’,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아이만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외쳐주겠어, 임금님은 벌거벗었잖아’, ‘약한 놈들이 더 약한 놈들을 때리네’, ‘보이지 않는 자유가 필요해서 보이지 않는 총을 휘갈겨’. 진심의 직구는 말로 하고 나면 얼굴이 빨개진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같은 말들처럼.
 
나는 이제 신해철을 마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좀 부끄럽다.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그래도 아직까지 블루 하츠가 좋은 걸 보면 어쨌든 인간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덕분에 나는 이서영이 되어 있다. 이상한 시간들이었다. 
 
나도 안다. 아마 오늘 저녁 내가 빈소에 찾아갔을 때 그가 기적처럼 냉동고에서 눈을 떠서 내가 지옥에서 돌아왔다며 고스트스테이션 주제가를 불러 제껴도 나는 다시 그를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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