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를 변호하다 좌빨인데 모

진짜로 이 체제는 최악이다. 방금 인터넷 돌아다니다가 '걸레들 특징.txt'이란 글을 봤는데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개소리로 치부해버리고 넘어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면 뭔가 한 마디라도 하고 싶어지지. 그 글을 요약하면 멘탈이 아픈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글은 그 여성들이 아프다, 강간당했다, 누가 죽었다, 이런 얘기를 계속 하는 게 다 사실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쓰고 있긴 했지만 -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타인에게 끊임없이 자신이 아프다/괴롭다는 걸 계속해서 드러내고 싶어하고, (아무래도 강간, 낙태, 죽음 같은 것들이 훨씬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보니.) 그걸 매개로 위로/위안받고 싶어한다는 게 가장 핵심적으로 마음 아픈 부분.


내 입장에서는 어떠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아닌지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에게 동정인지 애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애정을 갈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이다. 어디서부터 비롯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폐허가 가장 중요하다.


경험상 (경험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한국사회에서 이 여성들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다. (아마 남성들의 경우에도 삶의 소외에 가장 예민해질 어느 순간이 있을텐데, 남성들의 경우엔 그게 섹슈얼리티와 밀접하게 연관되지 않아서 여성들의 경우만큼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녀들은 파이어스톤의 표현을 빌려 "그들의 의식으로 무엇을 할 지 모르는 의식화 된 집단"이다.


그녀들은 대체로 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10대 시절에는 지난하게 억압받았으며,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 비해 그렇게도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자존감을 유지해줄 기제를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경우엔 다행히 그게 운동이었던 거 같다. 소위 '철이 든다'는 것은 그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존감을 유지할 기제를 찾아내는 것일 터이다.


자신의 자존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기 위해서 그녀들은 정신없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자신의 내부를 세밀하게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 그랬다가는 곧 자기혐오가 밀려올 것이다. 그리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에,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는 존재는 불행하게도 다른 남성이다. 그녀들은 타인의 감정을 매개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평생 그녀들에게 강조되어 왔던 것은 오직 "로맨스"였다. 백설공주와 인어공주를 읽을 때부터 그랬으며, 빅토리안 시대부터 한결같이 그랬다.)


'걸레들 특징'이라고 글을 싸는 남성들을 패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남성들도 마음아픈 일이다. 그 남성들 역시 가장 예민하고 다치기 쉬운 시기를 거쳐오면서 그 여성들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여성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마음을 쏟았다가 상처받았을 것이다. 거기서 어떤 남성들은 더 못된 마음을 먹고 멘탈이 예민한 여성들을 이용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여성들은 스스로를 방치한 채 거짓된 자존감을 찾으려고 평생 허우적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은 행복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문제겠지만 사회적 비난이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는 자각은 자신에게도 상처로 돌아온다. 숭배되는 것은 결코 자유가 아니다. ('따먹' 운운하는 남성들한테도 이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들 힘냈으면 좋겠다. 억압된 구조 안에서는 더 정교한 억압이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저런 곳에서 걸레라고 욕을 먹으면서 또 다시 그 상처를 지우기 위해 다른 상처를 재생산 하고 있을 그 어리고 생생한 정신들이 좌절을 정치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기를. "진짜 자존감"을 찾기 전까지는 자신이 상처를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아무 것도 증명해주지 않는 타인의 감정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이게 없으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용기는 손을 놓는 데에 있다.


누구라도 내부에서 올라오는 진짜 자기의 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었이면 좋겠다.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그런 세상.

덧글

  • 백범 2012/09/28 19:25 # 답글

    이거 머지않아 민주화당한다. ㅋㅋㅋㅋㅋ

    착한척 하지 않으면 주둥이에 가시가 돋는, 그러나 오직 말로만 착한척 하는 인간쓰레기들이 보시기에 상당히 불편한 글이거든...

    실제로 주인장 글 두 번 민주화 당하는걸 봤지. 그 중 하나, 청소년들도 연애하게 기회를 달라고 했던 글은 정말 괜찮은 글인데도 민주화당했지.
  • 지나감 2012/11/04 23:18 # 삭제 답글

    따듯한 좋은 글 감사해요. 원글을 보고 이 글을 보니 깨닫는게 많습니다.
  • 나도 왕년에 그랬어 2014/04/29 15:40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봤습니다. 20대 초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네요. 자존감을 찾기 전까지는 알면서도 자신을 망치는거죠. 트라우마와 바닥치는 자존감과 끔찍한 내가 혼돈하는 시기였어요. 어떻게 그 시기를 거쳐왔는지 저 자신이 대견하네요.
    그저 인생에 흔한 방황의 시기일 뿐인데, 성적 측면이 더 첨예하게 드러날 뿐인데 사람들의 시선은 저렇게도 모질죠. 썩을 것들.
    걸레들을 위한 위로 가이드라도 써봐야 하려나봐요.
  • 2014/09/12 12:09 # 삭제 답글

    이제 소설 안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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