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는 모두 문명하셨습니다. 좌빨인데 모

우리 모두 알다시피 북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가 북한이라고 부르는 그 나라. 얼마 전, 나는 <한반도는 왜 불안정한가> 라는 포럼에 갔다. 아아, 포럼을 들으면서 나는 북한에 대해 깨닫고야 말았다. 그것은…… 문명, 같은 것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 당신을 위해, 가벼이 설명하자면.

문명. Civilization. 시드 마이어라는 사람이 만든 게임이다. 자신의 문명을 선택하여 다른 문명과 경쟁하는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석기시대부터 시작해서 21세기로 우주진출까지가 무대. 왜 문명, 같은 것인지 내가 만든 쓰라린 문명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문명 5 기준입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문명하신다’며 떠들어 댈 때, 나도 문명5을 시작했다. 고양이 이름을 레닌과 트로츠키로 지을 정도로 러시아를 사랑하는 나는 기쁜 마음으로 러시아를 골랐다. 골랐는데 지도자 캐릭터가 레닌이 아니야! 예카테리나 대제다! ……뭐, 드레스가 예쁘니까 상관없지. 어쨌든 공산주의만 하면 되잖아?


내 목표는 유토피아 승리(문화승리)였다! 군사는 별로 없더라도 문화가 발달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고 싶어! 너희들이 병기를 뽑고 있을 때 나는 철학을 발전시킬 거야! 자유랑, 후원이랑, 합리랑, 권리랑, 질서를 찍어서 유토피아를 만들어야지! …어, 근데 이거 독재 찍어도 유토피아 되는 건가? 난 공산주의 찍을 거니까 상관없지만. 하악하악, 러시아의 의장님.


……라고 혁명덕후는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은 도기부터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문서, 철학, 신학, 행정, 으로 이어져 고고학, 뭐 기타 등등 신나게 사람들의 두뇌가 핑핑 돌아가는 모습이 내 눈엔 벌써 선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러시아 옆에 일본이 있었다. 내가 도기를 발전시키고 있을 때, 너희들이 청동기술에 때려박고 있을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각은, 일본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뭐~ 연구협약이라도 맺으면 사이좋아지지 않을까~ 라는 개 나이브한 생각이었는데. 그래서 어쨌든 식량이 필요하니 수렵 기술을 발전시키자, 오오, 사회정책을 채택할 수 있어! 당연히 자유지! 고대 그리스처럼 아름다운 철학적 사회를 만들어보렴! 따위의 생각으로 한참 재미가 붙고 있었다. 그때 내 군사조언자는 조금씩, ‘일본의 군대는 매우 강합니다’ 따위의 말을 하고 있었는데…… 보지 않았지…….


물론 나라가 일본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항구도 만들어서 물고기도 잡으면서 각지로 배를 보내서 어디에 어떤 문명이 있고, 어떤 도시국가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매우 즐거웠다. 와, 문명을 교류할 나라가 이렇게나 많다니! 각 지도자들이 엄청 화려한 그래픽으로 나타나! 도시국가가 만나면 돈 준다!


그때까지 좀 우울했던 점이라면, 주변에 있는 ‘야만인 캠프’가 되겠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문명에도 도시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존재들은 그냥 때려부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와서 날 치니까. 귀찮다면 좀 귀찮았고 떨떠름하다면 떨떠름했다. 왜 야만인들은 바뀔 수 없지? 왜 죽어야만 하는 거지?


사건이 발생한 건, 다른 나라들보다 가장 빨리 르네상스시대에 천문학을 발견해서 진입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자유를 다 찍고 권리로 들어가서, 다음번에는 ‘보통선거’를 찍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보통선거가 왜 전투력을 33% 증강시켜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선거는 멋있으니까.


그때였다. 오다 노부나가가 갑자기 전투를 걸어온 건! 난 천문대 짓느라고 내 옆에 얘네가 군사 깔아놓는지도 몰랐다. 군사전문가가 빨리 항복하라고 날 쪼아댔다. 군대가 없는데! 없다고! 도시 하나가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안 돼! 군사전문가가 계속 날 쪼아댔고, 난 턴이 돌아올 때마다 오다 노부나가에게 애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결국 내 도시 하나를 상납하고 몇 턴 동안 돈 바치기로 약속하고 그 전쟁을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나의 위대한 문명이……

천문학까지 발견한 문명이……

어디 중세시대 초반에서 껄떡대는 폭력배들한테……

참을 수 없어……


라기보다는, 또 쳐들어올까봐 무서웠다. 난 미래기술까지 가서 막 라디오도 만들고 텔레비전도 만들고 그러고 싶은데, 쟤네가 쳐 죽일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다. 문화발전은 중단되었다. 바퀴 기술을 발견할 때 ‘전차궁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비료기술을 발견할 때 ‘다이너마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따위가 나오는 이유를 난 이제야 깨달았다!


군대 유닛을 미친듯이 뽑아대면서 나는 도시국가들한테 돈을 갖다 바치기 시작했다. 저 일본이 쳐들어왔을 때 날 지켜줄 건 너희들밖에 없어! 어쨌든 일본한테 저항하려면 힘이 세야해, 도시 두 개나 뺏긴 거잖아! ……라며, 난 내 아래에 있는 태국을 쳤다. 태국 멸ㅋ망ㅋ…… 일본은 날 살려줬지만 난 일본처럼 자비롭지 않다. 내가 더 가난하니까.


그렇게 태국과 프랑스와 인도를 잡아먹고 나니, 이 대륙에 남은 건 일본과 러시아 뿐! 저 쪽 대륙에서는 영국과 그리스가 한 판 떠서 영국이 천하통일한 분위기였다. 태국과 프랑스를 잡아먹고 나니, 처음엔 ‘위대하신 지도자시여 어쩌고 저쩌고’ 하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훗, 피를 부르는 살인마께서 오셨군’ 이라고 날 불러대기 시작했다. 야, 이 년아, 너는!


그 사이에 나는 계속 사회정책을 발전시켰다. 이제 드디어 질서, 사회주의, 러시아 의장님이 되었다! 우와, 내 나라 사회주의! 사회주의라 함은 모두가 함께 공평하게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고, 노동계급이 직접 결정하고, 행동하는…… 음…… 노동계급이 직접 결정해서 지금 공수부대를 뽑고있단 말이지…….


러시아의 ‘의장’ 예카테리나라고 뜨기는 뜨는데, 이건 좀 뭔가 아닌 거 같은데. 이거 사회주의 맞아? 진짜? 라는 의혹을 품고, 나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일본과 영국을 이길 방법은, 이제 이거뿐이야. 미안해 일본……. 핵미사일이 터졌고, 교토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시를 빼앗은 게 아니라, 도시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선 농사도 지을 수가 없었다.


일본을 멸망시키고 나서, 공수부대를 투입해서 런던을 후드러까다가, (내 돈을 잔뜩 받아먹은 도시국가들은 신나서 같이 영국을 후드러까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아, 맞다. 내 유토피아 프로젝트…… 어디 갔더라. 증기력은 공장이 아니라 전함을 만드는데에 필요했고, 전자공학은 기계화 보병을 만드는데 필요했다. 레이저 기술은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제트기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었다. 경제조언자가 말했다. ‘군사유닛이 너무 많습니다. 돈이 모자랍니다. 사람들이 굶고 있습니다.’


유토피아 프로젝트는 5분의 4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유토피아인가. 난 그냥 누가 날 치는 게 너무 무서웠는데. 단지 그뿐이었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 버렸을까. 내가 치지 않으면 난 곧 죽을 거였고, 그래서 계속 군사유닛을 뽑아야만 했던 건데. 게임으로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위대한 예카테리나 의장은 그냥, 게임을 끄기로 했다.


이 게임에선,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냥 자동화 시켜놓으면 노동자들은 그저 묵묵히 일할 뿐이다. 현실에서도 이 게임에서도 그들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군대는 그냥 싸우고 사라진다. 지나는 턴은 끊임없이 군비경쟁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이게, 문명, 이었다. 내가 생각한 건 문명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명이란 이름은 군사력을 기초로 완성되는 거였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해야만 했다.


경제조언자는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했다. 예카테리나 의장님께서 굶주린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이 군대는 어째서 죽어가야만 했던 걸까.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대체 난 뭘 위해서 지금까지 이 0과 1의 조합에 매달린 걸까.



그랬다.

미국도 한국도 북한도 중국도, 그저, 문명이었다.


덧글

  • 지나가니 2011/01/24 20:40 # 삭제 답글

    난이도가 낮고(행복을 더 주죠) 식량이랑 사치품이 충분히 있어서 봉기를 안 일으키는 겁니다.
    행복 낮아지고 사치품 다 뺏기고 불행 이만큼 늘어나면 막 뒤집어요...
  • deepthroat 2011/01/29 12:02 # 답글

    저기,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아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요-ㅅ-;;; 넘 PD 티 내시는거 같아열~
  • 아미 2011/01/30 15:22 # 삭제 답글

    지나가니/봉기 요령이라니 바로 이게 내가 알고 싶었던거
    deepthroat/저 제 여친이 PD 물이 좀 덜 빠진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라구요 너무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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