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인생 - 투명인간들의 희망 독서의 계절


얼마 전, 최저임금 논쟁은 뜨거웠다. 경영계는 8원이 오른 4108원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화를 냈다. 8원 올려준다니, 누굴 놀리는 거냐고. 4100원이 얼마인지 알고는 있냐고.


4100원, 그 돈으로는 점심을 먹을 수 없다. 택시를 타기 두렵다. 한 사람이 하루의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다섯 가족이 하루의 생활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없다. 베개도 이불도 살 수가 없다.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운 돈이다. 그리고 그 4100원을 위해서 한 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허리와 무릎이 망가지고, 손가락이 뭉개져나가는 사람들이 이 책 속에 있다.


4천원 인생은 한겨레 21에서 연재되었던 노동 OTL을 묶어서 낸 책이다. OTL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 한 이모티콘이다. 절망적인 노동의 단면이라는 얘기다. 한겨레 21의 기자들이 ‘위장취업’을 해서 보여준 세상은, 절망적임에도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결코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트에서 카트를 밀면서 스쳐지나가는 커다란 목소리들, ‘저기요’라고 지칭되는 감자탕집의 지친 얼굴들, 폐쇄된 공장 안에서 숨죽여서 일하는 불법 사람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 조금도 변하지 못한 채 모던하게 기계를 돌리는 손들. 이들은 이 시스템 안에서 눈을 또렷하게 뜨지 않으면 그저 투명하다. 그래서 절망적이다.


SBS에서 하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생활의 달인들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의 달인이다. 1분에 200장이 넘는 편지봉투를 붙이고, 아슬아슬하게 열차와 열차사이를 넘어다니며 청소를 한다. 15개가 넘는 그릇을 한꺼번에 옮긴다. 그렇게 달인으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노동 OTL을 취재한 기자들은 우리가 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곧 저렴한 사람들의 삶이다.


이 저렴함은 모든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문이 열리자마자 큰 소리로 어서오세요, 를 외쳐야 하고,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저렴함이다. 4100원의 돈은 모이는 돈이 아니다. 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 돈이기 때문에,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저렴함이다. 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돌아볼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언제나 ‘싼 게 비지떡’이다. 비싸다면 사람들은 그를 돌아보겠지만, 싸기 때문에 그들은 투명하다.


고기를 파는 회사가 쫓겨나면 노동자는 함께 하루 풀칠할 일자리마저 잃는다. 저렴한 사람들은 그 매커니즘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경쟁시키는 거죠. 세상은 먹고 먹히는 거니까.” 기자는 승리는 항상 마트의 차지라고 대답한다. 4100원은 이들에게 쳇바퀴다. 결코 이 4천원을 벗어날 수가 없다.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도 나오기가 쉽지 않다.


빈곤노동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서 서술하는 기자들의 문투는 기사답다. 빈곤노동의 현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는 슬프다고 통곡을 하는 어투보다 더욱 슬프게 다가온다. 170평의 가게, 45개의 테이블, 홀서빙 직원 5명, 12시간의 노동. 분명히 각자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들의 처지는 비슷해 보인다. 감자탕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감자뼈다귀를 넣어 먹으면 사장한테 혼난다고 눈치를 살피는 ‘감자탕집 언니’들도, 폐쇄된 공장에서 시킨 치킨이 오면 경찰인 줄 알고 화들짝 놀라서 기계 밑으로 숨는 ‘마석공단 형’들도, 시식맨을 경계하는 ‘마트 동생들’도, 겁먹은 눈을 하고 있는 건 다 마찬가지다.


아주 적은 돈, 아주 원초적인 욕구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삶은 사람들의 영혼까지 가난하게 만든다. 꿈을 꾸는 걸 차단하고, 서로를 증오하게 만든다. 판촉매대에서 소리치는 마트 노동자는, 나보다 더 많이 팔까봐 앞에서 소리치는 마트 노동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서로 똑같은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투명한 사람들에게도 삶이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 이 절망의 기록 속에 있다. 사장에게는 사람취급도 못 받지만 음담패설을 하면서 웃어젖히고, 죽도록 일하고나면 바로 집에 가서 쓰러질 수밖에 없지만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불법 사람이라 오후 9시 전까지는 밖에도 못 나가지만 하루의 삶을 버티기 위해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는, 먹고 숨쉬고 춤추고 연애하는 영혼들이다. 이 사회 속에서는 값싼 노동력이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지만, 이들은 분명히 살아있다.


절망의 기록들을 써낸 기자들은 매 세션이 끝날 때마다 함께 있었던 동료들에게 편지를 썼다. 조금이라도 알린 것만으로도 희망의 씨앗이 생긴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언론이 이런 걸 알림으로써 사람들이 돕겠다고 말하는 것에서 희망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기자들이 ‘언니, 형, 동생’들에게 ‘소주 한 잔 하자,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내가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쓴 편지에서 더욱 큰 희망을 느낀다.


4100원을 받는 빈곤노동의 현실, 그리고 이 현실의 옹골찬 굴레에서 우리의 현실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다른 처지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 그들에게 존경과 연대를 보내는 만큼, 우리 모두는 함께 한 발짝 내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그 지치고 젖은 손에 힘을 실어주고, 바꿔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건 당연하게도 우리가 본질적으로는 같은 처지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단정한 문장이 구체화된 만큼, 각 세션마다 진보적인 화가들이 그린 일러스트 역시 이 삶들의 구체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임인택 기자는 ‘시급 4000원짜리 노동에 대한 기록은 통속이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통속이 진실이었다’고 기록한다. 방현석과 황석영의 초기작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통속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숨 쉬고 있다.



덧글

  • K 2010/08/12 10:08 # 삭제 답글

    으암, 어려워. 역시 뭔가 다른 세계를 사는구나. 전에 늦게 전화해서 뻘짓해서 미안 ㅠ..그냥 위로받고싶었음.
  • 백범 2010/08/12 10:44 # 답글

    희망이 있으리라 보시오?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헛된 착각입니다... 기득권을 손에 쥔 자들이 그걸 놔줘야지... 그런데 현실은 기득권을 안 놓으려고 발악하지 않소?

    하다못해 약간의 기득권이라도 쥔 386세대들 조차 그 얕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발악하고 있지 않던지???
    (애 사교육에 가정 소득의 절반이상을 갖다 퍼붓고, 10살도 안된 애를 새벽 1,2시까지 학원가나 과외 내돌리는게 그게 정상인가요? 자기 건강하고 가정다 파괴해가며 애들 무리하게 유학보내고 하는게 그게 제정신일까요?

    기러기아빠, 기러기엄마... 그건 386세대들의 탐욕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기러기아빠 란 놈들 건강 못챙겨서 병들거나 사고로 죽는 것, 기러기 엄마들 현지남자랑 눈맞아서 사고치는것... 하나도 동정심이 가지질 않습니다.)

    안될겁니다. 안돼... 두고 보슈. 두고 볼것도 없이 지금 주변을 둘러 보시지요. 서서히 무너져내리고 있는걸... 이대로 가다가 히틀러나 스탈린, 마오쩌둥 같은 분이 한반도에도 강림하는 날이 오리라... ㅋㅋㅋㅋㅋ
  • 2010/08/12 10: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10/08/12 11:10 #

     저 일어 잘해요. 한국땅 뜨고 싶은 생각이야 수많은 한국인들이 하는 생각이죠. 하지만 한국을 벗어난다고 해도 전 이 체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거면 한국 안에서 싸워보죠 :)
  • 2010/08/12 22: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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