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달쯤 산 거 같은데, 몇 번 먹지도 못한 거 같은데, 벌써 쌀이 다 떨어졌다. 원래 쌀이라는 게 이렇게 잘 떨어지는 거였나. 거대 뒤주가 없으니 원. 안양 집에 있는 거대 뒤주도 이렇게 잘 떨어질까. 방금 마지막 쌀을 탈탈 털어 씻어서 밥솥 안에 넣어놨다. 명왕님은 진 밥을 좋아하고, 나는 꼬들꼬들한 밥을 좋아하는데, 배려하는 차원에서 불리고 있다.
사실 집에서 밥을 먹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까 집에서 딱히 요리를 할 시간도 당연히 많지 않다. 난 학교에 가야하고, 명왕님은 일해야 하고, 그러려면 학교에서 먹게 되고, 대충 샌드위치 먹게 되고, 설령 집에 와서 먹을 때조차도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거 사 오게 된다. 심지어 어제는 밥에 마가린 넣고 간장 비벼 먹었다.
밥을 하려고 밥솥을 열어보니까, 밥솥에 반 그릇 정도 밥이 눌어붙은 채였다. 이걸 버리기도 아깝고. 그냥 순창 고추장 가져와서 밥솥째로 비벼먹었다. 생각해보니 밥솥째 먹은 때가 꽤 많다. 반찬보다 밥을 많이 먹는 편이라. 원래 설거지하기도 귀찮아하고, 그렇게 예쁘게 밥 먹는 거 챙기는 타입도 아니라서 더 그렇겠지만. 밥솥째로 밥을 먹던 기억은 대체로 좋은 기억인데(밥이 풍성하게 있으니까!) 떠올리니 속상해졌다. 하기야, 원래 친하던 친구라고 해도 사이가 틀어지고 나면 좋았던 기억들까지 나빠지게 마련이고.
덕분에 요즘 먹고 싶은 걸 떠올리면, 어처구니없게도 다 그런 거다.
얼마 전에 친구가 맛있는 거 사 주겠다고 했는데, 도저히 사 줄 수 없는 맛있는 것들.
깻잎 무침, 버섯볶음, 가지 볶음, 오그락지, 김치 볶음, 매운 된장찌개, 명란젓, 어리굴젓, 콩나물 무침, 뭐 그런 거. 엄마의 손맛. 하지만, 내가 할 줄 아는 음식은 계란말이나 계란찜 정도지…… 사실 그것도 할 시간이 없다. 내일까지 내야 할 과제도 있고, 내일은 학교에서 토익 시험도 본다. 졸업은 해야지. 내일은 또 내일의 일이 있을 거고, 사실 지금 블로그에서 끼적거리는 것도 이러면 안 된다. 이건 쪼끔 현실도피.
아주 오랜만에 밥을 하려니까 설렌다. 아까 긁어먹은 밥도 엄청나게 옛날 밥이었는데. 노랗게 눌어붙은. 거기다가 어제는 명왕님이 반찬도 사왔더라. (역시 할 시간은 없으니까) 새로 사온 반찬 떨어질 때까지는 집에서 밥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얼굴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아니, 사실 케첩에 밥 비벼먹어도 집에서 많이 먹고 싶다. 그만 사먹고 싶다.
집에 가서 반찬 가지고 나오려면 너무 눈치 보여서 못 하겠고. 진짜 반찬 기증받고 싶다.










덧글
당고 2009/10/15 22:55 # 답글
저도 밥솥째 먹어요-ㅅ-;;마가린 넣고 간장 비벼 먹는 건 맛있죠. 전 마가린이나 버터마저도 지금 집에 없다는;
앤윈 2009/10/16 10:24 #
헉 ㅠ_ㅠ 그러면 간장이라도. (야) 근데 간장밥도 맛있지 않나요!
헐 2009/11/09 23:03 # 삭제 답글
참치랑 참기름 간장 같이 비비면 맛나여
앤윈 2009/11/09 23:04 #
다음에시도해보겠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