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2 17:50

석희땅을 돌려줘, 이 역사적 감각도 미적 감각도 없는 새끼들아 좌빨인데 모



 진정이 안 되는구나……

 일단 기사를 보자마자 손이 떨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물론 이건 덕심 포함임. 석희땅이 짤렸다. 목요일 밤에, 그 청초하신 자태를 이제 더 이상은 만날 수가 없다. 그래, 현실은 현실이다. 인정해야만 한다. 목요일 밤마다 엄마와 함께 덕심을 나누던 행복한 나날들도 이걸로 끝이다. 그래, 끝난 거다. 그렇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시선집중을 들을 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이분과 나의 접점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거의 끝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을 살리겠다고 했다. 기업의 가장 큰 논리는 역시 이윤이다. 이윤. 그래, 이윤. 나는 이 사건이 이윤논리에 거대하게 반하는 사건이라고 일차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더 넓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 국민의 알 권리를 빼앗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니,
볼 권리를 더 크게 앗아가는 거 같기도 하지만. 후. 그래. 백분토론의 시청률은 떨어질 거다. 광고는 들어오지 않을 거다. "손석희 말 더듬는 거 봤냐 이 씨발놈들아"

 석희땅이 대체 뭘 어쨌다고.
 석희땅은 '훌륭한' 사회자다. 토론을 이끌어가고, 결론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체제에 걸맞은 훌륭한 사회자다. 그렇게 부르짖는 대의민주주의. 자연스럽게 토론을 이끌어간다. 주제에서 벗어난 논의를 부담없이 잘라내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들을 건네게 한다. 분명히 석희땅의 사회에 문제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다. 편드는 거 아니고, 진짜. 석희땅은 인위적이지도 않다. 자기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기도 하고, 자신도 사회자로서 자연스럽게 토론에 끼어든다. 사회자의 위치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석희땅은 권위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겸손하게 끼어든다. 그렇다면 이 토론에서 누군가가 '졌을' 때, 그건 석희땅 때문이 아니다. 진짜, 아니라고.

 그냥 석희땅은 자연스러운 의문을 이야기하고, 그건 좌우를 딱히 가리지 않는다. 그 의문의 해결은 토론 패널들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졌잖아. 석희땅이 딱히 이기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진 거잖아. 늬들이 진 게 석희땅 잘못이니 이 병신들아…….

 이윤논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 "손석희 없애고 시청률 떨어지면 아예 백분토론 없애버리려고."


 그러게.
 그치?

 미디어법만으로 안 되겠든?


 얼마 전에 한글날 기념연극이라는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라는 연극을 봤다. 평을 다시 쓰긴 귀찮으니까, 그때 낸 리포트에서 몇 단락 발췌하겠음.


 "한글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지식의 평등이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극이 가지는 가장 커다란 감동은 여기에서 나온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지배계급들은 결코 지식을 평등하게 분배하지 않는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배계급이 아닌 사람들에게 세계의 메커니즘에 대한 정보는 정말 편향적으로 들어온다. 대체로 우리는 ‘알 수 없’고, ‘알려고 할 시간도 없’다. 사람들은 어쨌든 오늘의 닭고기를 먹어야 하고, 오늘의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는 이 사람들에게 세계의 메커니즘을 도무지 드러내 주질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아예 밝혀지지 않을 경우도 있다. 아직도 용산참사의 수사기록 3,000쪽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극 속에서 세종은 누구라도 책을 읽을 수 있고, 누구라도 정보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말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단지 정보에 가까이 가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의 언어가 아닌 자기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최만리 같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언어를 쥐여주었을 때, 그때 이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혁명이 꿈틀댈 것이었다. 최만리에게 세상을 뒤집어 놓을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상것들이나 노비들이 제 주인에게 사리분별에 대해 얘기하는 끔찍한 세상’에 대해서 최만리는 이야기한다. 그것이 최만리에게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그 대화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서로 이야기하는 본질이 다르다는 것, 서로 생각하는 ‘진리’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진리라는 건 단순히 진리가 아니다.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건 끔찍한 일일 수도 있고, 가야 할 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본질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민영방송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사람들은 그때 ‘지적 평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얼마나 정보를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정보는 지금도 많지 않다. 우리가 직접 모든 걸 파악하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미디어는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그나마 있던 정보도 빼앗긴다는 건 틀림없는 역사의 후퇴였다. 세종이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 가졌던 그 희망을 빼앗기는, 명백한 역사의 후퇴였다. 그리고 지금 역사와 현실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 눈앞에 드러날 때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같은 위치에서 지식에 같은 접근성을 가진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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