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15 13:42

자신의 취향 [그렇지만 타인의 취향] 평이한 문화생활


 그 날, 나는 밤늦게까지 영화 얘기를 했다. 데쓰프루프가 좋다는 얘기를 했다. 로드리게즈가 포인트라는 얘기를 들었다. 제목이 기억 안났던 체리 달링의 영화(플래닛 테러였다)가 어떤 장면이던간에 B급의 감동을 준다느니, 체리 달링이 허벅지에 총을 꽂고 있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미지적 쇼크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면서 새벽까지 지샜다.

 생각해보면 너무 신나서 완전히 잊어버린 게 있었다.
 너는 수줍게 나한테 느낀 '지적 우월함'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상관없지,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할 거니까."


 겁이 덜컥 났다. 절대로 네 취향은 저속하지 않다고, 난 네 감성에 반한 부분도 있다고, 상투적인 건 그만큼의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투적인 거라고, 전형적인 건 어떤 의미에선 사물과 상황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고 줄줄 읊어댔다. 그러면서 난 계속 두려워했다.


 난 어렵지 않아
 날 감당할수 없다고 생각하진 마
 난 널 좋아해


 단어는 달랐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말 뿐이었던 득.




 그리고 최근에 혼자 아트하우스 모모를 찾아가서 본, 이 영화를 떠올렸다. 본 건 두 번째. 처음엔 수업시간에 봤다. 보고나서 한참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영화는 '취향의 발견'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취향이라는 프레임을 통해서 갈등을 겪고 자기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카스텔라는 저속하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건 카스텔라다.

 콧수염을 기르고, 연극 같은 건 지겨워하고, 무미건조하게 살고, 보디가드한텐 바보취급 받아왔을 때 카스텔라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 취향이 어떤 거든 별 관심도 없어보였고, 단 걸 먹는 사소한 취향조차 아내의 요구에 가려지고 있었고. 집안은 온통 아내 취향대로 화려한 꽃무늬로 가득하고, 카스텔라는 거기에도 아무 관심이 없어보였다.

 다만, 카스텔라는 자기 삶속에 거칠 것 없이 내쳐 뛰어들었다. 콧수염은 밀어버리고, 관심없던 연극을 몇 번씩이나 보고, 평소에는 절대 만나지 않을 법한 '호모새끼들'과 교류하면서 카스텔라는 그제사 삶을 찾아간다. 그치만 그건 절대로 쉬워보이지 않는다. 입센이 코미디작가라는 둥 사람들은 카스텔라를 놀리고, 카스텔라는 온갖 실수들을 저지른다. 당연히 차이지.

 그렇지만 콧수염을 밀어버린 카스텔라가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사서 꽃무늬 방에다 걸어놓고 핑크일색인 식탁에서 아내의 품에 안겨서 울던 장면은, 아이러닉한만큼 어쩌면 그렇게도 사랑스러울까. 카스텔라한테 카스텔라의 삶을 찾아준 건, 카스텔라 자신의 사랑이다. 이 영화에서 삶과 자신에 대한 애정은 '자기의 취향'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카스텔라한테 사랑을 돌려준 것도 그 취향이고, 심지어는 카스텔라가 떠났을 때 카스텔라의 아내(카스텔라 뿐만 아니라 그 여동생한테까지 자기 취향을 강요하던!)를 구원한 것도 '자기의 취향'을 인식한 카스텔라의 여동생이다. 계속해서 꽃무늬가 나으니, 더 밝은 색이 예쁘니 하면서 관철시키다가 결국 카스텔라의 아내는

 "이것도 예쁘네요"라는 한 마디 속에 자기를 열고 다른 사람 속에서 울 수 있게 됐다. 카스텔라의 여동생이 가질 수 있었던 그 '위로의 힘' 역시 굳게 선 자기 자신 속에서 드러났다. 브루노 역시도 마찬가지다. 실연의 상처를 위로하는 힘도 플룻을 불게 되면서 단단해진다. 마지막에, 그 플룻을 여러명과 '함께' 연주한다는 게 매우 마음 따땃해졌다. 자기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 때야말로 우리는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다.

 전에 했던 어떤 연애는 그랬었다. 난 계속해서 내 취향이 굉장히 조악하거나, 또는 저속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방은 전혀 관심보이지 않았고, 어떤 경우엔 혐오하는 것 같았으며, 어떨 때에는 아직 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거 재미없잖아'라고 무질러버리기도 했다. 내 취향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었을 때, 난 스스로를 사랑하기조차 힘들었다. 괴로웠다. 상대방의 취향을 내화하는 거밖에는 아무런 답이 보이질 않았다. 나중에는 나 자신의 자기애와 그 '내화'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끔찍한 일이었다.

 더 또렷하게 있자.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많이 싫어하면서.

 어차피 사는 건 그런 거지 싶다. 계속 자기를 잃어버리면서 또 계속 자기를 재구축해 나가는 거. 누군가랑 관계를 맺는다는 것도, 또 누군가랑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나도 마찬가지고, 너도 마찬가지고. 누구라도 완전한 자신의 프레임을 독창적으로 가지고 세상을 볼 수는 없다. '내가 세상을 인식한다'고 말하는 건 역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조합하면서, 또 관철시키면서 살아왔던 수많은 프레임들 중에 몇 가지를 선택하고, 또 새롭게 조합하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다. 그 프레임 속에서 어떤 경우에는 남이 좋아하는 것들을 싫어하기도 하고, 남이 싫어하는 것들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

 아주 다행스러운 건
 사랑에 빠진다는 건 그 프레임이 격렬하게 재구축되는 과정 중에 하나라는 거.


 자, 이제 "인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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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kkclan 2009/02/16 19:51 # 답글

    결론은 취존중
  • 앤윈 2009/02/17 08:36 #

     ㅇㅇ 취존중
  • 티모시 2009/02/17 01:36 # 삭제 답글

    취존중.. ㅋㅋ 오랫만에 들어보는듯..

    앤윈님 글을 이렇게 길게 쓰는게 부러워요 ㅜ
  • 앤윈 2009/02/17 08:37 #

     헉, 요약본을 제공해야 하나여
     "염장질"
     읗허허허ㅓ허허허허허ㅓㅎ허허허ㅓ허 <-

     길어서 재밌으면 좋은데, 길고 재미없으면 큰일 ㅠ.ㅠ
  • kkkclan 2009/02/22 20:09 # 답글

    당신은 신당 당게 어떻게 열람해? 댓글이 안보이는데... 컴퓨터가 이상한건가? 아니면 비당원 막아놓은건가.
  • 2009/03/02 21:2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3/29 22:34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7/07 12:35 #

     풍부해다고 말해주셔서 감사. *-_-*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관음증이 결합하면 그거 시너지 효과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장난 아니에요. 진정한 예술크리
  • 넋새 2009/04/15 14:06 # 답글

    나도한다.
  • 2009/04/15 14: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7/07 12:34 #

     안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chan 2009/07/04 20:02 # 답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좋아하고 싶어요.
    정말 완벽한 나의 것을 좋아하고픈데..그걸 찾기도 쉽지는 않은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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