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데이트 후기! 좌빨인데 모

 데이트 후기지만 아무래도 연애밸리에 올리는 거보단 뉴스비평밸리에 올리는 게 좀 더 적절해보여서 뉴스비평밸리로. 데이트라면 역시 집회데이트니깐요!

 1.

 서울역에 도착한 건 7시 30분이 조금 지나서였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진도 깜짝 놀랐다. 서울역 안쪽까지 구호가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다.

 역 안쪽에선 사람들이 리플릿을 나눠주고. 규모가 엄청나게 큰가보다, 하고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까 예상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역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서울역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계속해서 같은 구호를.

 "독재타도, 명박퇴진"
 이라고.

 독재의 사전적 정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의거하지 않고, 지배자가 자의적으로 지배를 강행하는 정치"다. 제대로 된 이주비용 없이 쫓겨나야 하고, 터전의 반복된 이주를 강요당하는 이 상황. 거기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생떼거리"가 되고 "폭도"가 되어서 불에 타 죽는 상황. 정말, 과히 틀리지 않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 분들은 안티2mb카페에서 나온 분들과 한대련 분들이었다고. 거기다가 주요역(정확히 어느 역인진 모르겠는데, 환승 역들인 듯)들에서 다 그걸 하고 있었다는 거다. 우와……. 서울역 집회가 마무리 될 때까지 그 분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덕분에 발언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목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계속 똑같은 구호만 외치고 있는 그 분들을 보니 마음이 참. 날씨는 정말 추웠다. 한 사십분 서 있으니까,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은 줄기차게 한 가지 구호만 외치고 있었다. 아니, 애타게.

 혁명의 투혼 문선이 보였다. '몰아치는 반동의 쇠사슬' '저 착취와 반역의 무리들' 같은 가사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동 혹은 반역이란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곧 꽃다지가 반격을 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우리의 행복, 권리를 위해서 반격하자고. 얼마나 더 피를 흘려야 저들은 만족하냐고.

 



 2.

 그리고 사람들은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리로 사람들이 뛰쳐나가려고 하자, 아주 당연하게 길은 모두 막혔다. 사람들은 서울역을 빠져나가려고 여기저기서 우왕좌왕했지만, 전경의 차 행렬은 길었고 단호했다. 어떻게 하나. 막혔다고 해서 가라앉을 분위기도 아닌데.

 몇몇 사람들이 서울역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열이 우르르 따라 올라가더니, 서울역을 죽 가로질러서 그 뒤, 충정로쪽으로 사람들은 빠지기 시작했다. 우와… 멋있어… 이런 창의력쟁이들… 그렇다. 우리는 종로를 걷고 싶은 게 아니었다. 모로 가도 거리로 나가기만 하면 되지!

 충정로로 돌진하면서 또 구호는 거세졌다.

 "김석기를 처벌하라, 살인정권 퇴진하라" 같은 구호들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사람들이 우레와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두다다다다다다. 얼결에(약간 겁먹고) 손 꼭 잡고 따라 뛰었는데. 아. 중간에 끊어먹으려고 작정하고 경찰이 뛰어들어왔던 것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때 끊겨서 후미에 남겨졌던 사람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해서 그 곳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나랑 내 파트너 및 다른 사람들은 충정로 뒷길로(…) 편법 내달리기(…).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ㅠ_ㅠ 편법 내달리기는 유턴해서 본대열과 합류하면서 끝났다. 같이 편법 내달리기하던 ㅁ씨나 ㅎ씨가 박수치면서

 "와 지지합니다"
 "저희도 함께할게요"

 이 싸름들이… 그러면 전문 시위꾼 포쓰가 안 날 거 같져? 안 그래여…… 아무튼 진이 담배불 붙이느라 내 손 잡고 깃발을 떠나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바람에 잠깐 불안했던 거 말고는, 고무적인 달리기였고도.


 


 3.

 신촌으로 가네, 시청으로 가네 하다가 가닥은 시청으로 잡힌 듯 했다. 한참을 걷다가, 이대 앞에 들어서기 전 웨딩샵 거리에서 반가운 소리를 만났다. 작년 5, 6월에 종종 들었던 클락션 소리.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신나서 박수를 치면서 구호를 외치다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앞에 가던 사람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는 거. 또 대열 끊기는 거 아닌지 걱정하는 건가 싶어서 나도 뒤를 돌아봤는데.

 늘었다.
 처음 행진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 확실히 대오가 늘어났다.
 '지지받고' 있었다. 정말로.

 거기다가 경찰은 아무래도 사람들을 추월하는데 실패한 걸로 보였다. 아무리 가도 가도 경찰은 나오지 않고. 클락션을 울리는 차들도 꽤 자주 맞닥뜨리고. 너무 뛰어서 가슴이 뛰는 건지, 기분이 좋아서 가슴이 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날씨는 쩔었지만. 진이 볼을 쓰다듬으니까 볼에서 얼음 떨어지는 기분이(-_-)

 사람들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멈춰서서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것도 굉장히 즐거웠다. 모여서 얘기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거. 한참 발을 붙들렸던 건 신촌 로타리였다. 신촌 로타리에 도착하자마자, 옆에서 진이 중얼거렸다.

 "와 선택지가 다섯 개야"

 다들 오종종 서서 잡담도 하고, 추워하기도 하고, 뽀뽀도 하던 찰나 디자인 서울을 비판하는 구호가 나왔다. 사람이 죽어가야 하고, 사람들이 쫓겨가야 하는 '매력적인 디자인 서울'은 누가 봐도 분명한 기만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그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살인자 이명박". 연대로 갈 건지, 홍대로 갈 건지에 대한 토론 사이에서 살인자 이명박이란 소리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렇지. 기업들의 이윤 때문에, 이제껏 삶을 꾸려오던 터전에서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들. 그 사람들을 진압하기 위해서 거기서 맞서싸울 수밖에 없었던 한 경찰.

 '이명박'은 단지 '이명박'이 아니다.
 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이명박'으로 보여지는 바로 이 시스템이다. 우리는 옳게 외쳤다. 그게 바로 살인자였다.
 


 4.

 저기가 살롱 바다비고, 여기 WASP가 있었는데, 아 참 그리고 저 쪽이 쌈지 스페이스

 따위 아무런 쓸데없는 말을 조잘대면서, 나는 진 팔짱을 꽉 꼈다. 이 고향 온 기분! 홍대로 행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네! (<- ) 행진이라는 건 늘 종로, 남대문, 명동에서 하는 건 줄만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프라이데이 나잇이었다. 홍대가 반짝거릴 바로 그 타이밍.

 또 구호를 외치고 또 두다다다다 달려가다가
 홍익대학교 앞에서 사람들은 멈춰섰다.

 지나가던 펑크족 효하가 "멋지다!" 라고 외쳤다. 난 얼씨구나 "멋지면 같이 해요!" 라고 받아쳤다. 홍대가 반짝거릴 프라이데이 나잇인데, 좀 이상했다. 홍대보다 더 반짝거리는 건 "삶과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서울역에서 홍대까지 가열차게 뛰어 온 이 사람들이 아닌가.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11시 30분에 집회는 자진해산했다고 한다. 난 통금이 12시까지. 우리 집은 경기도 남쪽. 11시에 출발했다. 홍대입구역에는 운동화를 신은 전경들이 홍대입구역 5번 출구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나는 쫄아서 마스크를 벗었다가, 추워서 도로 썼다.

 와들와들 떨면서 시덥잖은 농담하다가 진이

 "골초, 주정뱅이, 전문시위꾼!"

 그러더라. 그렇지만 여전히 이 밤 홍대에서 가장 반짝이던 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입술들이었고 난 실실 쪼개면서 그랬다.

 "야, 사람이 데모를 하고 살아야지…"

 돌아가신 분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어쨌든 우리들은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거리를 달렸다. 우리들은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분들의 죽음에 대해서, 딱 한 가지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

 우리의 삶이
 더 편안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거.

 그래서 온 거리에서 빛나던 사람들은 너무 예뻤고. 어디 남산타워에서 반짝이는 야경을 내려다보는 거보다야, 그 빛나는 사람들을 보는 건 훨씬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데이트는, 역시 집회데이트. :)





 +) 운동하면서 연애한다고 나한테 진정성이 없다, 넌 미팅하려고 운동한다고 화내던 사람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 사람은 내가 거짓말했다는 분노가 거기까지 연결된 거였지만) 그리고 새삼스럽게, 그 말이 우스워졌다. 다 '삶'을 위한 걸텐데.


덧글

  • paleluna 2009/01/24 07:37 # 답글

    뉴스비평란을 보다가 이거 갑자기 웬 데이트 후기를 올리고 있나 싶어서 들어왔더니 집회랑 관련이 있는 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 앤윈 2009/01/24 11:08 #

     넵:D
  • 2009/01/24 09: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1/24 11:10 #

     많이 수고하셨습니다!_! 사진찍는 분들이 제일 대단하신 듯. 그 상황에서, 기록을 어떻게든 남길 수 있고, 카메라는 무겁고… (음?)
  • 2009/01/24 10: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1/24 11:10 #

     안녕하세요! :)
     아유 링크까지 해 주시고 감사합니다 <-
     하지만 공감해주시니 더더욱! 역시 그렇죠 -_-)d
  • 2009/01/24 17: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1/24 21:13 #

     헉 우에다가 빨이기 쉽지 않은데.(<- ) 어떤 성향이신지 감이 잘 안 잡히네요 ;ㅁ;
     정치적 성향이 뭐 모든 연애를 좌우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건전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나름 즐거울 거 같기도 해요. 힘내세요!
  • kkkclan 2009/01/27 14:17 # 답글

    나도 막 가고 싶었고 그러나 공부해야 했고.. ㅠ 수고했음. 엄청 뛰었다면서. 후기라도 보니까 좋쿠나 이휴...
  • 앤윈 2009/01/27 14:18 #

     ㅠ.ㅠ
     공부하면서도 큰 집회 정돈 나올 수 없나...
  • kkkclan 2009/01/27 17:16 # 삭제 답글

    그정도는 나갈 예정. 아 휩쓸리면 공부고 뭐고 없어서 주간지나 챙겨보고 뉴스레터나 볼라고.
    이글루스 이렇게 해대면서 큰 집회 나가지 않을 정도로 강철의 의지를 갖고 있지는 못함.
    그런 고로 집회 공고 자주 포스팅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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