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지나가면, 혹은 미움이 지나가면 오늘 날씨



 그냥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지만 나는 블로깅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오타쿠니까 헤헤… 거기다가 수놩님 글 보고 왠지 급 격공감해서 결국 쓰기 시작했슴 헤헤… (하지만 별로 상관없는 주제라서 트랙백은 하지 않았다) - 근데 쓰면서도 진이 이 글 못 봤으면 좋겠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역시 블로그 주소 따위 알려주는 게 아니었어! 그치만, 뭐. 보면 어쩔 수 없고. :-)




 어제 생긴지도 얼마 안 되는, 그래서 실은 많이 좋아하는, 뽀뽀만 해도 막 죽갔는 마이 파트너한테
 화냈다
 -_-

 나도 정말 화내고 싶지 않았는데, 화가 나더라. 밤에 통화하다가, 내가 전 남자친구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던 게 생각났는지, 요즘은 괜찮냐고 물어와 버린 거. 묻는 거 까지는 당연히 화낼 일이 아니고, 난 많이 괜찮아졌다고 대답했다. 요즘엔 밤에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생각나는 빈도도 훨씬 덜 하다고. 그렇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증오'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이 말이 시초였다.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시작한 건. 사실 난 평소에도 그 증오에 대해서 되게 아무렇지 않게 표출했기 때문에(아니, 내가 사람이 미운데 어쩔 거야) 별 생각 없이 우르르르. 난 걔가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행복했으면 좋겠다거나 이런 생각은 손톱 만큼도 안 들고. 어떤 사건이 생겨서 죽는다고 해도 하나도 안 슬플 거야. 아,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어. 떠올리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뭐, 넓은 관점으로 보면 인간의 행복을 바란다거나 이런 것도 있긴 하지만. 조금 좁히면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기왕이면 좀 괴롭게.




 그리고 조금 후에 폭발했다. "미워하면 뭐가 남냐. 그러면 네가 더 힘들 뿐이다. 난 네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가 돌아온 거. 당연히 뭐 "원수를 사랑하는" 게 우리가 살면서 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택지라는 건 알지. 그리고 미워하면 내 감정이 격해지고 또 그거 나름대로 '평온함'이랑은 거리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거 아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증오'를 조절해야 해? 대체 왜? 내가 지금 뭐 직접적으로 해꼬지를 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밉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워하고 있는 거 뿐인데? 뭐하러?

 얘가 나랑 지금 뭐 청소년 권장도서 제일 끄트머리에 나오는 경구 얘길 하자는 건가
 아니면 불교철학에 대해서 논의라도 하자는 건가
 누가 그걸 지금 몰라서 그래?
 어떻게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넌 팔레스타인의 난민들한테 '미워하는 건 죄악이다' '로켓포를 쏘는 건 폭력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니?
 좌르르르ㅡ르르르르ㅡ르르르르ㅡ르르르르르ㅡ르를르르ㅡ르르르르르ㅡ르르르르르ㅡㄹ



 헉헉헉





 하지만 난 정말 너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 난 널 정말 좋아해. 그래도 서운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게 됐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아침이 밝고,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깐 왜 그 말을 굳이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물론 나는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지만. 언젠가 그 사람이 전 여자친구에 대한 증오를 나한테 쏟아낼 때를 기억해냈다. 난 그 때 그 사람이 안타깝다고 생각했었고,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그 증오들은 "나는 과연 저 사람한테 저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저 사람의 마음 속에는 그 애가 너무 커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격한 두려움이 되었었고. 결국 그건 그 애에 대한 열등감으로 변했다. 전혀 가질 필요가 없던 열등감이 너무 커져서, 나는 그 사람이 그 애 얘기를 할 때마다 괴로웠고, 울었다. 말은 못 했지만.


 혹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거리낌 없이 나한테 얘기해 달라"고 넌 말했지만. 난 다시 생각해봤을 때, 오히려 그게 두렵다. 내가 이 감정들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때가 되면 넌 안심할 수 있을까. 가슴 속 어딘가에 찌꺼기처럼 남아있진 않을까. (물론 난, 그 사람을 인정하고 널 부정하는 종류의 말은 절대로 안 하겠지만.) 네가 날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내가 지금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게 참 슬프고도. 내가 너한테 할 수 있는 말은, 뭐 그 정도구나.

 걱정하지 말고, 그냥 좀 봐달라고.
 언젠가 지나면 나아지겠지. 넌 시간이 지나서 나아지는 걸 어제 말했듯이 '회피'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다친 건 언젠가는 나아. 누구나 자기가 다친 거에 대해서 싸우면서 살지. 네가 같이 싸워주려고 했다는 걸 알고 있어. 절대로 난 너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 예쁜 말, 좋은 말들만 잘 골라도 뭐가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그니까 난 그냥 너한테
 좋은 걸 주고 싶다.

 네가 날 걱정해서 전했던 말들에 대해서, 네가 옆에서 들어주고 지지해준다면, 난 꼭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도 벌써 많이 괜찮아졌다고. 난 그게 절대로 회피라고 생각하지 않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데로 비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괜찮아지니까' 내 속에서 비중이 작아지는 거 뿐이야. 네가 말한대로 언젠가는 나도 '웃으면서 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게 과연 좋은 결말이냐에 대해선 내 속에서도 굉장히 많이 싸우고 있지만은.) 난 "그 사람이 싫어. 나한테 있었던 일들은 사실이었고, 난 그 사람을 증오해" 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ㅁ-♬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ㅁ-♬" 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


 내가 네가 필요한 건, 내가 낫기 위해 네가 필요한 게 아냐.
 그건 결국 '나 혼자' 치유해야 할 문제고, 난 내 삶의 한 쪽에서 '별개로' 그치만 '함께' 지지하고 싸워나갈 수 있는 게, 너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역시 난 너한테 그냥, 좋은 걸 주고 싶다. 예쁜 거, 좋은 거, 착한 거. :-)

 화내서 미안.



덧글

  • 2009/01/22 14: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1/22 15:00 #

     그런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또 그럴 용기는 없어서 ㅋㅋㅋ 그래도 '좋아했던' 사람이다보니. 그나마 가장 파괴적인 생각으로 나가던 게 그 사람 집에서 자살했으면, 뭐 이 정도더라구요. 끙 -_-
  • 앤윈 2009/01/22 15:00 #

     물론 지금은 절대로 그런 생각 안 함.
  • audtn 2009/01/22 15:34 # 답글

    이 글도 졸 공감..;ㅅ;
    글구 좋은걸 주고싶은 사람을 만나서 부럽삼.. 좋아보이구요
  • 앤윈 2009/01/22 16:41 #

     히히
     좋은 걸 주어요 우리 함께!!!! 시카에게...
  • 에테메난키 2009/01/22 17:44 # 답글

    쳇바퀴?
  • 앤윈 2009/01/23 00:37 #

     음?
  • 2009/01/22 21: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9/01/23 00:37 #

     슬플 건 없죠. :)
     전 그렇게까지 '회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진 않은 거 같아요. 아직까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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