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13 17:32

옛날 리뷰 재탕 : <지상 최후의 남자> 와 <나는 전설이다> 독서의 계절



 

 

 

 "지상 최후의 남자"라는 영화가 있다. 1964년작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영화 보는 내내 친구랑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거의 서로 팔을 치면서 숨도 못 쉬고 처웃어제꼈다. 영화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1) 주인공은 지상 최후의 남자다. 세상은 흡혈귀들한테 점령당했다. 주인공은 낮이면 낮마다 말뚝을 들고 다니면서 왜건 하나로 전세계를 질주한다. 물론 밤이 되기 전에 말뚝박는 작업을 완료하고 집에 돌아와야 한다.

 

 2) 왜냐면 집에 돌아오면 흡혈귀라고 불리되 좀비새끼임에 틀림없어보이는 프랑켄슈타인들이 어디서 대거 등장해서 집 문을 처두들겨대면서 주인공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책에 나오는 방법이란 방법은 다 해보는 거 같다. 마늘 걸고 문 걸어잠그고 뭐 십자가도 걸고. 놀라운 건 실제로 좀 효과가 먹힌다는 거다…….

 

 3) 주인공은 좀 외롭다. 어디서 흡혈귀한테 안 물린 개새끼만 봐도 눈물을 흘리면서 쫓아간다. 물론 나중에 그 개새끼한테도 배신당하지만. 이건 넘어가자. 그러다가 좀비새끼가 아닌 여자를 만난다! 하악하악. 주인공은 냉큼 여자를 집에 데려와서…… 하악……

 

 4) 죽을 뻔 한다. 알고보니 그 여자 훼이크 친 좀비였다. 주인공의 슬픈 과거사가 줄줄이 나온다. 사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가 흡혈귀가 되는 바람에 아내를 자기 손으로…… 거기다가 사랑하는 후배마저…… 사실은 의사였는데…… 블라블라블라. 물론 좀비 여자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좀비 여자의 동료들이 오고, 주인공은 튄다.

 

 5)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이  5번이다! 진정한 액션영화의 묘미! 사방에서 달려드는, 하지만 줜나 느려서 도망가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는 좀비새끼들! 하지만 이 좀비새끼들 인해전술로 나온다! 주인공은 진정한 클리셰란 클리셰는 다 보여준다! 의자로 후려치기! 화학약품 들어있는 책장 넘어뜨리기! 창문깨고 뛰어내리기! 마지막에 주인공이 교회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무려 사방에서 폭죽이 드다다다다! (왜지? 왜지? 무대입장이냐? 뭐지? 뭐지?)

 

 6) "당신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유일한 인간이에여"라는 말을 듣고 남자는 "그 그래 나는 전설이다!" 라고 외치면서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

 

 

 

 

 

 

 라는 게 이 소설의 내용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이 무려 "I'm Legend"라는 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도 스티븐 킹의 「셀」 때문에.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에게 바칩니다. 그르타. 바로 그 리처드 매드슨이 이 리처드 매드슨이었던 것이다. 사실, 영화까지 보고 저렇게 즐겁게 처 웃었는데, 굳이 또 윌 스미스판 영화를 보고 싶지도 않았고(이건 안 봤다) 또 소설을 읽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은 "고전"이라는 말이 좀 맘에 걸렸던 것도 있다. 현대시대를 살아간다면 고전보다는 현대물을 읽어야지! ……라기보다, 솔직히 대중문화일 수록 고전은 그다지 재미없다. 레드제플린 초기 음악을 고전이라 간지난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화려해진 린킨파크가 더 좋단 말이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학교에서 "소설학회"를 한다. 그리고 우리 학회에는 좀 "고전매니아"인 선배가 있었다. -_-

 

 세미나 주제로 아이 앰 레전드라니 아이 앰 레전드라니 그게 얼마나 웃기는 소설인지 알고 추천하시는 거에요, 형? 거기다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아이 앰 레전드는 우리 학회 애들이 다 빌려갔잖아 썅 뭐 어쩌라고 서점에 가서 보니까 만천원이야 아 놔 내가 이 돈을 내고 개그소설을 사야겠냐고 사야겠냐고 사야겠냐고 뒤표지에 킹 횽아가 "나는 바로 이 작품을 읽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오 과연 그래서 그렇게 인물들이 유머러스하고…… 만천원을 내고 투덜거리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소설을 폈다. 그리고

 

 

 

 

 안 웃기잖아…….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지독하게도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서술해간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저런 말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황을 냉혹하게 진단하고 파악한다.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그게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반복해서 해 나간다. 그 상황에 있는 게 틀림없지만,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로버트 네빌이라는 화자는 객관적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외로움"이라는 감정마저도 객관적으로 응시한다.

 

 물론 그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로버트 네빌은 많이 휩쓸린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로버트 네빌"이라는 개인이 "외로움"이라는 엄청난 공포 속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는 건, 굉장히 많이 슬프다. 또 잔혹하다. 사실 "로버트 네빌"을 공격하는 좀비들(아니 흡혈귀들)은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고 할 수도 없다. 물론 이 소설에서 '공포의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들이겠지만. 나는 "공포"라는 감정은 "모르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들, 스티븐 킹의 「옥수수 밭의 아이들」. 익숙하던 것들이 생소해지면서 공포로 다가오거나, 전혀 모르는─내 세계가 아닌 것들.

 

 로버트 네빌의 "외로움"은 로버트 네빌이라는 화자의 냉담함으로 인해 낯설어진다. 아무것도 없고, 어디에도 말을 틀 수 없고, 무엇과도 통할 수 없는 사람의 "외로움".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 남은 외로움. 그런 상황인데도 로버트 네빌은 자신의 그 휩쓸림에 대해서조차 "응시하려고 한다". 이 소설은 그 '객관적인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을 거다. 대체 그건 얼마나 절망적일까. 절대적인 외로움. 어떻게든 메꾸려고 한다고 메워지는 게 아닌. 엄청나게 많은 LP판을 가져다 놓아도 결코 메워지지 않을. 그 외로움. 혼자일 수밖에 없고, 혼자이지 않으면 안 되는 외로움. 마지막에 로버트 네빌은 "공포"에 대해 스스로가 "공포의 존재"가 될 것을, 최초의 "모르는 것"이 될 것을 선언한다. 이제 자신과 같은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아무도 자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모를 것이므로". "전설"이라고. 외로움의 공포 속에서, 결국 공포로 다시 태어날 거라는 거다. 그렇게 그 외로움에서 네빌은 겨우 벗어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외로움에 대한 공포"는 더 강렬했다.

 

 

 

 

 

 

 

 

 그래서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면. 사랑하는, 사랑했던, 사랑한다고 말고 다른 말로는 딱히 표현할 말도 없는 사람을 징하게 속여왔다. 그 사람은 그 날 이후로 "대체 내 동족은 어디있냐"는 말을 종종 한다. 어디에도 "내 동족"은 없다고. 이 세상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사람은 없는 거냐고.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나는, 저 무시무시한 표지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가 한 좀비같은 짓에 종종 몸서리를 치고 그런다. 나는 "로버트 네빌"을 만들어 낸 걸까. 이건 대체 어떤 종류의 무서운 죄란 말인가. 그래서 자꾸 울고 그런다.

 

 사실 1년 전에 읽은 소설을 지금 와서 리뷰쓰는 건 다 그런 이유다. -_-) 저 가운데 있었다면, 외로움 속에서 나는 "좀비"가 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 그건 아니었을 거다. "전설"이 되기보다는 "좀비"가 되었겠지. 살아가고 싶고, 동료가 필요하고, 신인류로서 공포에 떨면서 살더라도, 그렇게라도 살아가고 싶으니까. 그게 설령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란 아마 다 그럴 거다.

 

 "전설"은 다르다. 로버트 네빌은 그렇지 않았다. 외로움에 떨고 개새끼를 쫓아갈지언정, 자기가 또렷하게 인간으로서 사고할 수 있다는 걸 믿었고, 침착하게 행동했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또 생각한다. "좀비"로서, 그 사람이 "전설"이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지금 이렇게 두려워하는 만큼. 뭐, 믿어달란 말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어차피 나야 "물어달라고 졸랐을" 테니까. 내 사소한 외로움 때문에.

 




 +) 최근 나온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여전히 못 봤습니다. 쓴 지 좀 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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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tarLArk 2008/11/13 18:26 # 답글

    근데 쥔공은 항체가 있어서 물려도 좀비 안됨.
  • 앤윈 2008/11/14 00:09 #

     아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StarLArk 2008/11/18 01:33 #

    생각해보니까 항체 있다고 못될건 없군요.

    무지와 미신적 공포야 말로 주인공과 흡혈귀들의 행각을 전설로 만든 제 일 공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 honeybunny 2008/11/13 20:31 # 답글

    "나는 "공포"라는 감정은 "모르는 것"에서"...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전 통제 능력 상실(혹은 부재를 느끼는 것 자체)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고 "Mist"를 미치도록 좋아하죠. ㅋ
  • 앤윈 2008/11/14 00:08 #

     으악! 저 미스트 관련한 리뷰 쓴 거 있는데!
  • 앤윈 2008/11/14 00:09 #

     http://annwn.egloos.com/4655998
     저도 허니버니님처럼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원초적 공포'에 대한 얘기를 중점적으로 다뤘던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다시 보기 부끄럽네요 <-
  • 엘리엇 2008/11/16 21:21 # 삭제 답글

    다시 생각난다 우리 개새끼쨩....
  • 앤윈 2008/11/18 02:10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우 진짜
  • 2008/11/19 16:1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8/11/19 16:27 #

     고맙습니다. 아파해주셔서.
  • 2008/11/19 16:4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8/11/19 17:03 #

     충고 감사합니다.
  • 2008/11/19 21:59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앤윈 2008/11/19 23:59 #

     아, 그 이후에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전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잘못한 게 없었거든요. 그 쪽에서도 아마 그런 상황에 분통이 터진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 때 그 글에 대해선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ㅠㅠ 많이 화났었는데, 위로받았어요. ♡
  • Kasca 2008/11/20 00:21 # 답글

    신림동 살 때 저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끝에 그래 난 전설이야-라는 문장을 소리내봤더니
    참 씁쓸하더군요.
    저도 영화 (윌스미스 나온거)는 아직 못 봤는데
    원작소설이 훨씬 깊은 거라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있지요 ㅎㅎ
  • 앤윈 2008/11/20 00:22 #

     그래 난 전설이야 ;ㅍ; 왠지 말만 해도 외로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밥말리가 중요한 모티브로 쓰이는 거 같아서 궁금하긴 해요, 영화. 어떤식으로 풀었을지가.
  • zzz 2009/12/02 03:05 # 삭제 답글

    그냥 보세요..ㅋㅋ
  • 앤윈 2009/12/03 15:21 #

     아직까지 볼 기회가 안 생겼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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