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22일부터 8일이나 있었는데, 언제나 돌아오던 아사쿠사는 제대로 못 봤다는데에 생각이 미쳤다. 생각해보니까 '카미나리몬은 봤어?' 라는 얘기를 몇 명한테 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래, 카미나리몬은 봐야지.

여행 셀프컷 중에 가장 잘 나온 사진. 이게 진정 나란 말인가.
물론 자다가 오후쯤 일어났으니까, 느적느적 걸어가다가 중간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담배가게에서 담배를 샀다. 기념품을 담배로 사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사실 담배가 꽤 편하기도 하고. 적당히 다섯 갑 정도 샀다. (적은 친구)

카미나리몬 가는 길. 쓸데없이 사람 엄청 많다.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이 쩐다. 감상 : 별 거 없네…….
왼쪽의 상이 비의 신, 오늘쪽의 상이 바람의 신이거나 두 개가 반대거나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래서 카미나리(천둥) 문이라고.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사실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카미나리몬 따위가 아니다. 아사쿠사에 왔으면 아사쿠사답게 아사쿠사에 있는 것들을 먹어야지.

이런 거

이런 거

이런 거!!!!!!!!!!!!
OH MY SWEETS
무엇보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그래, 배가 고픈데 아이스크림 따위나 처먹으면서 배고픔을 달랠 수는 없지. 내게 필요한 것은 강같은 탄수화물. 그래서 매일 저녁에 집에 들어올 때마다 24시간 하고 있어서 내 코를 괴롭혔던 코코이치방CURRY집을 찾아갔다. 나중에 여기에서 먹었다고 했다가 같은 바 옆자리에 앉았던 27살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언니한테 혼났다. 굳이 여행까지 가서 체인점에 간다고. 그렇다, 체인점이다. 딱히 맛있다고 유명한 데도 아니다.

여기.
그러나 24시간 하고 있다. 안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여기에 열흘이나 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케이크 따위나 먹고 나서 저녁에 배가 고파서 낑낑대면서 들어오는 나를 길 건너편에서도 강렬한 냄새로 유혹했다. 하지만 난 언제나 거지였고 ㅉ댜ㅓㄹ미ㅓ리ㅓㅈㄷ리ㅑㅓ딪럳ㅈ미러ㅣㅓ 그러나 오늘만은---- 좋아, 마구마구 먹어주겟서

치킨 커리요!
옙, 알겠습니다.
하더니 요리를 시작하신 아져씨. 가게는 한산. 초 한산. 사람 아무도 없어. 아니 내가 들어간 시간이 어정쩡했나. 3시 30분쯤이었던 거 같은데.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아까 담배 넣어준 봉지를 찍어봤다. B어쩌고 하는 저건 약인 듯. 뒤에 있는 선전으로 추정해봤을 땐 근육통 약.

산 담배들. 한 개 빼곤 집회 나갔다가 다함께 사람들의 손으로 흩어졌다.

나왔다 커리♡
우적우적 와구와구 우걱우걱 어?
안 없어지네…… 나중에 들어보니 노멀로 시키면 여자애한테는 좀 빡센 양이라더라. 보통 여자애들은 하프로 많이 시킨다고. 하지만 이미 시킨 거, 남길 순 없지.
우적우적 와구와구 우걱 헉헉헉
지금이라도 활화산처럼 뻥 터질 거 같은 배를 우겨잡고,(그러나 맛있었다 엉엉 역시 시장이 반찬. 맵지 않은 커리가 좋아염.) 헥헥대면서 밖으로 나왔더니, 여전히 여기는 아삭후사. 아유 어색해라. 내내 동네에서 안 놀고 밖으로만 나돌았더니.

역 근처는 아사쿠사라고 해도 조용하지 않다

매일 다닌 아사쿠사 역. 그러나 역사를 정면으로 본 건 처음이다. -_-;
배도 불렀겠다. 역 근처의 상가 탐방이나 해 보기로 했다.
제일 처음 발견한 신기한 건 트렁크팬티 전문 상점. 수작업으로 만드는 팬티도 많다고.

신기해서 찍었지만 들어가보지 않았다.

잡동사니 상점. 아사쿠사의 많은 상점들이 그렇듯이 노인분이 하고 계셨다. 왜 이렇게 거리에 노인이 많이 사는 건진 잘 모르겠다. -_-)

종이 가게. 비싸…… 카드, 편지지, 종이로 만든 인형 같은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세밀하고 정교한 그림들이 많아서 좀 신기.


아, 종이 부채도 있었구나.
아사쿠사에서 신기했던 건 역시 인력거.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았지만 도무지 탈 용기가 나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인력거꾼들(?)을 도촬.



나름 호객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사람이 탄 마차를 끌고 간다니 너무 미안해서 도무지 탈 수가 없어 ;ㅁ;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무슨 기분일까" 상상만 했다. 하지만 역시 못 타겠어…….

싼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어서 들어갈까말까 고민했다. 커피숍이었는데 어딘지 다이쇼시대의 분위기가 풍겼다. 안쪽도 그랬을까는 잘 모르겠지만. 하카마를 입은 종업원이 있다던가.

예쁜 유카타. 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때는 이미 거지라서.
아사쿠사라면 전통의 거리. 전통의 거리에서 sweets라면 역시 화과자, 안미츠. 그런 마음으로 안미츠를 찾아 헤매고 있던 중, 엄청나게 비싼 안미츠의 물결 속에서 그나마 적당한 가격의 안미츠를 발견했다.


우와, 630엔! 800엔 넘는 것도 있었는데!

들어갔더니 발이 쳐져있는 창문 앞으로 안내되었다. 금붕어가 걸려있는 게 귀여워서 찰칵.

가게 맞은 편에서 뭔가 전통 탈 같은 걸 팔고 있길래, 내 카메라의 줌을 시험해보는 마음으로 찰칵.

드디어 나왔다. 맛챠 안미츠. 아즈마와 맛챠중에 고민하다가 맛챠를 시켰다. 맥도날드에서 맛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던 게 마음에 걸려서. 미-쨩은 일본의 SWEETS 취향은 화과자 취향과 양과자 취향이 극명하게 갈린다고 했는데, 나는 뭐 딱히 그렇지 않은 듯. 안미츠도 맛있었당. 그렇게까지 달진 않았지만, 맛챠랑 팥이 섞이는 것도 달콤하면서도 약간 쌉싸름한 맛이 좋았음.
잠이 와서 호텔에 들어가서 한숨 자려다가 이상한 걸 발견.


기…… 긴자 라이프
우리나라로 치면 압구정의 삶
뭐 이런 거인듯……. 나름 비싼 물품을 모아놓은 곳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름 웃기잖아…….
호텔로 버스타고 돌아가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7시. (도쿄에서도 시간관념 없는 여전한 니트생활) 좋았어. 나오미상을 만났던 그 바로 돌아가자(?). 그래서 다시 한 번 소울트레인(점장 이케다씨)를 찾아갔다.

화이트 와인.
홀짝홀짝 마시면서 마스터랑 미친듯이 수다를 떨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이 곳의 마스터 이케다씨는 정말 "저는 마스터입니다" 라고 얼굴에 쓰여있는 생김새. 넥타이와 정장, 콧수염의 삼박자가 멋지게 어울리는 남자다.
그리고 이곳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이 뒷통수를 맞고 돌아갈 곳이었다.
재즈바답게 마스터는 재즈에 관한 지식이 하루키 뺨을 후려갈기는 듯. 실제로 재즈드러머로 활동한 전적도 있다고 한다. 다양한 식견을 가진 마스터의 추임새에 타서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는데, 살집이 있는 옆집 아저씨같은 사람이 옆에 앉았다. He's name is 후나에. 그리고 나는 이 분을 시작으로 이 곳의 무서운 점을 알게 되었다.
몇 마디 나누다가 갑자기 후나에씨 왈 술을 더 마시라는 거다.
- 아 제가 돈이 없어서 히히
- 내가 살게
라면서 자기 지갑을 당당하게 가리키신다. 우와 고마워요!!!
진짜 농담 좋아하고, 잘 떠드는 옆집 아저씨 같은 후나에씨. 무슨 말만 하면 마스터를 호색한으로 몰아붙이거나, 이 바에 5년 째 살고 있는 귀신이 있다거나, 이게 진짠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말들만 늘어놔서 신뢰감 제로라고 나도 마구 까대면서 즐거워했다.
마스터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대소설 작가라는 말을 듣고, 오, 그렇냐고 고개를 주억이는데--- "꽃의 케이지"(하라 테츠오)의 원작을 썼다고 한다. 나름 자랑스럽게 마스터가 자기 아버지 소설이 실린 잡지를 들고와서 아버지 사진도 보여줬다. 마스터 나이는 우리 아빠보다 두 살 많다는데, 딱 우리 아부지 연배에 우리 아부지가 가질 법한 자랑이다 싶어서 실실 웃었다.
두 번째로 시킨 칵테일은 걍 후나에씨가 "마스터한테 한 번 맡겨보라"고 해서 그냥 맡겼다.

"탄산계에 달고 하얀색인 칵테일"
사과주스가 들어갔다. 달착지근하고 새콤한 맛. 거기다가 탄산이 들어갔는데- 그런데도 '술의 풍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게 장점인 듯. 맛있다고 감탄하면서 이 칵테일은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 그 글쎄 안녕하세요 칵테일로 할까
헐

사람 좋은 후나에씨.

뭐 임마? 라고 외치는 듯한 포스터. 후나에씨는 자기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저는 마스터입니다"
"저는 놀러온 꼬꼬마입니다"
새벽까지 있으면, 여기서 마스터 부인분의 생일파티를 한다고 한다. 왠지 모두들 '마마'라고 부르는 분위기. 가족 모임에 끼어도 되는 건가 불안해하니까,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는 마스터. 2시쯤 되어서 마스터 부인 + 마스터 부인네 가게 종업원 + 농구선수 같은 장대 아저씨 + 왠지 잘생긴 청년이 들어왔다.
축제는 어제였는데 마스터 부인은 유카타 차림. 거기다가 엄청나게 젊다. 뿐만 아니라 애교스러운 미인. "아라, 카와이!!!!!"가 입에 붙어있는 언니.
- 좋은 남자지?
라고 마스터가 들어온 청년을 보고 나한테 속닥속닥.
'이 쪽은 이소용쨩, 한국에서 관광 온 우리 신입이야' 라고 소개되었다. OTL 금세 줄여서 마스터 부인인 마리코씨는 소-쨩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셨고, 어느새 옆에 있는 히토미씨도 소-쨩. 마스터는 엄청나게 맛있는 꽁치조림을 꺼내왔고, 생일 케이크까지 가져다 놓고 파티타임.
마리코씨는 나한테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그 날 받은 꽃다발을 자랑했다. 알고 보니 가라오케 스낵(우리나라에서 말하는 가라오케와 같은 의미인 듯 하다. 접객을 같이 하는 술집.) 마담이었다. 마마라고 부르는 건 그래서였다. 그리고 정말 '술집 마마'다운 관록이 묻어나는 애교. ㅠㅠ
9월에 한국에 여행오면 연락하라고 휴대폰 번호를 알려드리긴 했는데.
연락이 올진 잘 모르겠다. -_-)a
기억나는 이야기라면
1) 재즈 아티스트들 추천.
아사다… 뭐라고 하는 재즈 아티스트의 음반을 추천받았다. 일본인인데 정말 흑인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더라.
2) "좋은 남자"(이름 까먹어쩌)씨의 젓가락 자랑.
무슨 젓가락이 1만엔. 가지고 다니면서 쓴다고 한다. 다들 돌려가면서 구경했다. 오오 장인의 솜씨 오오
3) 마리코씨의 끝없는 꽃다발 자랑.
근데 너무 귀여우셔서…… 저희 이모 뻘인데 이런 말씀 드리기 참 뻘하지만……
4) "아베 히로시랑, 이나가키 고로랑, 오이카와 미츠히로를 좋아해요"
"아, 호스트 취향이구나! 가부키쵸라도 가보지!"
"네, 네, 네?!"
5) "저녁은 뭐 먹었어?"
"카레요"
……어?
……어?
…… 어?
"아, 카레----요."
"아 난 왜 갑자기 야한 농담을 하나 했잖아ㅣ렂디ㅓ리커피ㅓㄷ지"
* 카레(彼)는 일본어로 그 남자, 그 이의 뜻이 있슴미다.
혹시라도 일본에서 살게 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나 정도면 충분히 가라오케 스낵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던 마리코씨. 하지만 노동비자가 나올까요……. 사실 마리코씨는 최근에 들어온 얼굴만 예쁘고 손님한테 제대로 접객을 안 하는 사키란 점원이 꽤 얄미운가부다. 그런데도 얼굴이 예뻐서 동반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고 툴툴대는 걸 보니, 역시 중요한 건 얼굴 -_-
중간에 내 잔이 비었다고, 아무 칵테일이나 하나 더 해 주라는 히토미씨의 요청에 마스터는 "셰리주를 섞은 칵테일"을 만들어주면서, said
"이거 안뇨하세요한테 가져다 줘"
안뇨하세요입니까 OTL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시고, 거기다가 1000엔만 내고 <-
가게 문 닫을 때쯤 내일 또 오겠다고 약속하고 일어났다. 무려 후나에씨가 호텔 앞으로 바래다주기까지! 마지막 화제가 한국은 성형수술비용이 정말 싸다는 내용이었는데. 후나에씨는 계속
"나는 성형 반대요!"
를 외치시면서 데려다 주셨다.
아, 풍족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