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 30분.
결연하게 NDS를 접고 카훼 인간관계를 나섰다. 아까 이미 클럽은 다 찾아뒀다. 오늘 나는 더 이상 불안에 떨면서 헤매이지 아니하여도 되는 거시다. 급격히 찾아오는 안심과 자랑스러움.

당당하게 걸어나온 이 곳은 시부야 역 앞.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횡단보도대신 저런 식으로 큰 육교(사방으로 연결이 되는)가 역 앞에는 꽤 있었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잘 감이 안 온다. 차가 없으니까 더 안전하려나?
야마시타 서점과 메이지 서점 사이를 지나서 주욱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클럽 앞을 돌아다니는 사람과 마주쳤다! 아무래도 저건 관계자! 시작 시간은…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한 6시 30분쯤 아닐까?
"저기여, 공연 볼라고 그러는데여"
"아 네 왤케 일찍 오셨나여"
"몇시 시작인데요?"
"7시 25분까지 다시 오세요"
헐
어쩌지
다른 데에 들어가기는 지나치게 돈을 많이 썼다. 아 인간관계로 돌아갈 수 없나…… 그래서 고른 곳은 야마시타 서점. / 아니 서점이 아니라 서점 앞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중턱 쯤. 적당히 햇볕을 피하면서 nds를 꺼내들 수 있는 적격지.
아 후줄근해……

야마시타 서점 앞에 있던 카페 미야마의 메뉴판이다.
주저앉아서 찍으면서 진심으로 미루 크레이프(?)가 먹고 시펐다능.
(미루크레이프겠지?! 밀크 레이프가 아니겠지?!?!?!)

류타로 선생님 왜 제 마음을 자꾸 몰라주시나요
하는 기분으로 잠깐 엔디에스에서 고개를 떼고 앞을 본 정경
아, 자판기에서 뭐라도 뽑고 싶었지
하지만 돈이……

소녀적 연애혁명과 열혈 불타라 리듬혼-_-을
번갈아 두들겨대다 슬렁슬렁 일어나서 다시 라이브하우스를 향했다.
일본의 하늘이나 우리나라의 하늘이나,
오후 7시 20분쯤의 여름하늘은 비슷하게 선선하고 예쁜 듯.

이 곳이 GIG-ANTIC. 담쟁이 넝쿨로 덮여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앤틱하면서도 분위기 있었다.
예쁜 건물이었지만 단점이라면, 화장실이 건물 밖에 있다는 정도-_-)
나 말고도 다른 한 여자분이 어슬렁어슬렁거리면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쪽에서 티켓 받는 사람이 올라와도 된다고 소리친다. 일본의 라이브하우스는 클럽들이 다 비슷한 거 같은데, 입장할 때 누구보러왔는지를 물어보더라. / 하지만 한국에서 누굴 마음에 두고 갈 수 있을만큼 일본 인디가 널리 퍼져있는 것도 아니그여……
- 누구 보러 오셨어요?
- 루시라인이요.
원피스를 입은 단정한 여자분이 들어가고, 아까 7시 25분에 오라고 했던 그 사람이 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든다.
- 누구 보러 오셨어요?
- 그런 거 없는데요……
- 네?
- 걍 이름만 보고 와서…… (엄밀히 말하면 루시라인이 Lucy라서 귀여운 마음에… 하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
그러나
말하지 않았음에도
뭐 뭐지 나 좆뉴비 티 엄청낸 거 같아
진심 좆뉴비를 보는 눈빛으로 티켓을 줬어
뭐지 돈을 치르면서도 부끄러워 왜 왜 왜어ㅙ왦ㅇ래ㅓㄷ쟈러ㅣㄷㅈ머리ㅑㄷ저ㅣㄹ
클럽 안으로 들어가자 왠지 다들 매우 친해보인다. 아니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지. 일본도 밴드랑 친한 애들은 서로 다 친하고 그럴 거. 물론 난 실제로 좆뉴비이므로 조용히 맥주 한 캔 받아서 구석자리에 의자놓고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 붙어있던 포스터들.
공연장 내부를 포스터로 꾸미는 거, 예쁘고 좋더라.

이름이 GIG라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한쿡의 G**K 이라는 라이브 하우스랑 어딘지 흡사한 분위기.
무대의 위치나 안의 구성(?) 같은 게.
곧 공연이 시작했다.

첫 팀.
이름 까먹었다.
세계 어디에서나 메탈하는 애들은 대충 입고 나온다는 결론(…)을 새삼스럽게 심어준 팀이었다. 말 그대로 '정통 메탈'. 적당히 멜로딕했지만 그렇다고 '멜로딕한 팀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뭐, 좋았다.
근데, 어라?
나야 원래 메탈 공연가도 조용히 듣기만 하는 타입의 인간이지만요. 뭐인가요 이 분위기는? 님들 왜 이러케까지 가만히 있나여?! 그렇게 음악이 마음에 안 드나여? 그냥 진짜 캐 조용…
다 가만히 서서 까딱까딱…
잠깐 끝난 사이에 담배를 피우려고 했는데
어라?
라이터가 없다?
뒷 자리에 서 있던 남자한테 불 좀 빌려달라고 했답.
그리고 다음 공연 시작

Fenonemo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음원이 없다
줴길
제일 마음에 들어 ㅠㅠ)♥
23일에 들었던 어쿠스틱 공연을 제외하면(너무 분위기가 다르니까) 제일 내 취향이었던 음악인 듯. 약간 휘시망즈를 비롯한 몽환적인 시부야계를 떠올리게 하는 멜로디 위에 얹혀진 강렬하고 빡센 기타와 드럼. 아니, 일단 기타랑 드럼 두 명밖에 없구요, 멤버가.
느무 마음에 들어서 ;ㅁ;
거기다가 왠지 기타 옵하 간지 ;ㅁ;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되어서 너무 상쾌하게 웃으심! 음악 쪽도 이렇게 격렬한데도 뭐지 이 스피아민트의 향기는!!!
담배를 다시 입에 물자, 뒤에 서 있던 그 남자, 바로 라이터 불 켜서 가져다대 주신다.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 숙이니 말씀하시길
- 이 팀 마음에 들어요?
- ㅇㅇㅇㅇㅇㅇㅇ
뭔가 얘기하다가 'いる'─(사람이)있다─와 'ある'─(동물/물건이)있다─를 헷갈렸다. 말하다가 헷갈렸다는 걸 깨달아서 아, 이루가 아니라 아루… 라고 했더니 "(사람이)있는 거냐" 라면서 막 비웃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엉엉 난 한쿡인인데 도쿄 출신이 아닌데
- ㅈㅅ 아직 일본어가 서툴러서 ^^;
- 어? 일본인 아님?
- 넵 코리아에서 왔슘미다.
- 오오오오오오오오ㅗ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담배 불 붙여주신 분의 이름은 다카하시 유지 씨. Futtong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세 번째 팀이 시작하는 그 막간에, 그럼 이만 가보겠다고 손을 흔들흔들하고 가셨다. 뱌뱌이.
그리고 헤드라이너(인 것처럼 보였던)


미모의 보컬리스트가 인상적이었던
LUCY LINE
하지만 이 분들 음악은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가오잡는 음악 싫어하는데다가, 뭐랄까, 어딘가 나카시마 미카의 냄새가 나는 게… 걍 "일본 롹입니다" 뭐 이런 느낌… 확실히 음악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앞의 두 팀이랑 비교할 게 못 되는 거 같기도 했는데. 그냥 '지향점'이 나랑 좀 달랐던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 화장실 가고 싶어 맥주 한 캔 다 마셨더니
하지만 이 곳은 화장실이 밖에 있어 내려갔다 올라오면 끝나버리는 거 아냐?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결국 마지막 곡 부를 때 못 참고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 어정쩡한 시간. 분명히 내가 돌아가면 끝났을 거야… 뭐지… 이 허무함… 베이스 소리가 화장실에 징징 울리고 맥이 빠져서 화장실을 나오는데 눈 앞에
- 어 유지씨 안녕하세요
- 왜 여깄어?
- 화장실 가느라…
- 끝난 분위긴데?
그러타. 이미 음악소리가 안 들리고 이썼다. ;ㅁ; 문이 열리는 순간 비참해지겠지
- 그러게여…
- 여기 이 사람, 한국에서 여행왔는데, 훼노메노 음악이 되게 마음에 들었대!
- 오! 'anyonhaseyo'
(저 정체 불명의 안뇨하세요는 정말 한국인이라고 밝힐 때마다 들었다 -_-)
- 걍 같이 술이나 먹으러 갈래요?
- 헐 그러죠 뭐 도로 올라가기도 거시기 하고
라고 해서 그냥 술 먹었다. 유지 씨와 테츠야 씨와 타쿠야 씨. (아 이름 헷갈려)
이야기의 큰 주제는
1. 어떤 뮤지숀을 좋아하세연
2. 일본의 롹 페스티벌의 문제
: 아무래도 자꾸 해외 뮤지션만 불러오려고 하는 게 있는 모양. 자국의 인디씬은 전혀 각광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나마 좀 위안삼는 게, 어떤 곡이라도 사람들이 즐겁게 놀아준다는 거 정도라고.
그래서 말했다.
한국에선 방금 전에 훼노메노같은 정도로 빡센 음악이 나오면 공연장 전체가 슬램존이 되고 그런다고 이 동네 왜 이러냐고 -_-
3. 인디씬 주류 음악
: 좀 편중되어 있는 감이 없지 않다고. 어쿠스틱계열도 거의 비슷한 멜로디와 비슷한 느낌의 포크 음악 같은 게 주류고, 심지어는 스트리트뮤지션들도 좀 그런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4. 한국 연예인
: 하지원을 알더라능. 그 외에 별로 특기할만한 점은…….
5. 밋치-
: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왠지 모두 쉽게 수긍해서 캄착. 병신취급당할까봐 쫄았는뎁... '노래를 좋아해요' 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여자애들이 좋아할만 하지. 입에 장미라도 물고 불러야 할 거 같지?' 헐, 일본 여자애들 취향은 이러쿤요!!!
6. 왠지 에로한 이야기
: 나중에 술이 좀 되고나니 막 나오기 시작했는데, 내가 어색해하는 걸 보고선 뚝 끊기기도 몇 번. 지금 생각해보니 참 좋은 사람들이었던 듯.
술집을 나섰을 땐 오전 3시 30분. 당연히 차는 끊겼지 ^_^
아무 거침없이 이 분들이 향하는 건 타쿠야 씨네 집이었다. 또 편의점에서 맥주 사들고. 아, 어느나라나 젊은이들의 문화는 별로 다를 게 없구나… 아오야마 터널을 지나서 타쿠야 씨네 집에서 또 맥주 까고 있자니, 새벽 5시 쯤 결국 여기저기 뻗어서 다들 잠들었다.
오전 8시 30분.
일어났더니 다 자고 있더라.
조용히 짐을 싸고 세수를 하고 모두 안깨게 조심해서 나왔다. 어제 뭔가 설명하려고 한자를 쓰던 종이에 '즐거워써요~' 라고 편지도 썼다. 그리고, 조용히 냉장고를 열어서 우롱차를 내 물통에 다 옮겨 담았…… ^_^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하하하ㅏ하하하ㅏ하하하하ㅏ하하하ㅏ핳 은혜를 원수로 갚았네
죄송해여 타쿠야 씨…… 술 사주고 잠도 재워주셨는데 …… 가난한 여행자자나여 좀 봐주세여… ←
혼자 나와서도 어떻게든 찾아갈 순 있겠지!
버스를 타고 시부야 역으로!
버스 정류장 찾느라 15분 헤맸지만 어떻게든 무사히 찾았다.
졸리고 피로해서 전철 안에선 내내 잤고, 아사쿠사 역에 내리자마자 급격한 허기에 호텔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사쿠사 역 안에 있는 서서 먹는 허름한 국수집.
300몇엔밖에 안 하던 싼 카케 소바.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고 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순환버스였는데, 버스가 너무 예뻐서 한 번 찍어봤다.


무슨 버스가 이렇게 생겼나여 ㅠㅠ 여기 놀이공원?!
오전의 햇볕은 그렇게 따갑지는 않았지만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이것은 버스요금을 넣는 통. 굉장히 좋은 통이라고 생각해서 찍었다.
1000엔짜리를 넣으면 알아서 거스름돈이 나온다.

목이 말라서 벌컥벌컥 마시면서 온 우롱차.
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저거밖에 안 남았더라.
다시 한 번 타쿠야 씨, 죄송합니다. 감사했어요. =_=
오전 9시 20분경
식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