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지하철 노선도를 보면서 시부야까지 갔다가, 다시 오모테산도로 돌아와서, 겨우 갈아탄 시모키타자와. (사실은 시부야에서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했었다만) 역에 도착하자마자 잠깐 당황했다. 뭐, 뭐지 이 판자촌은? 역인가? 곧 무너질 거 같은데? 뭐 뭐지? 여긴 도쿄가 아닌가?
남쪽 출구로 나가자마자, 또 한 번 당황했다.
홍대잖아
아무리 걸어도 홍대 아무리 봐도 홍대 그냥 여긴 홍대 뭐 뭔가요 저 일본까지 와서 왜 홍대거리를 걷고 있나요 ─ 그래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도 시모키타자와였지만.
어딜봐도 홍대에서 간판만 일본어로 바꿔 놓은 거리. 하지만 여기 지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프린트 해 온 지도를 보면서 열심히 걸었다. 보려고 생각한 공연은 桃の香りがGood~ 丸いラブソング(복숭아 향기가 Good~ 동그란 러브송).
제목만 봐도 달착지근한 어쿠스틱 공연의 냄새가 풀풀 풍기지 않는가. 거기다가 싼 가격. 웬만하면 다른 공연은 다 2000엔 이상인데, 이 공연은 1500엔 정도의 저렴한 가격. 아마도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그럴 테지만, 공연 타이틀이 간지니까 큰 실패는 안 할 거라는 되도 않은 믿음.
그래서 공연장 앞에 도착했는데
분명히 1500엔이니까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일텐데!
뭐 뭐지 이 긴 줄은?!
그리고 앞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ㅈㅅ 오늘 공연은 매진>
뭐 뭐라구요?!?!?!?!??!?!?!?!
어 어쩌지 이제 아사쿠사로 돌아가야 하나 하지만 배고파 공연 보고 나서 뭐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어 어 어 ;ㅁ; 맥이 풀려서 공연장 맞은 편에 턱하니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표를 들고 있다. 어헝헝, 예매해서 오셨군요. 악, 나도 정말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달착지근하게 복숭아 향기가 나는 건가여. 부러운 마음으로 줄들을 주욱 훑어보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10분 후.
어, 여긴 SHELTER네.
SHELTER는 시모키타자와에 생긴 지 10년도 넘는 클럽이다. 상당히 유명한 클럽. 물론 여기서 공연하는 라인업도, 상당히 되지 않으면 공연하기 뻘하다는 소문이다. 내가 찾는 곳은 시모키타자와 LOFT라는 곳이었는데…… 시간, 7시 00분. 공연 시작 시간, 7시 30분. 왓 더.
다시 지도를 들여다보니까, 제일 앞에 붙어있는 지도는 SHELTER 지도다.
하느님 캄솨 ;ㅁ;
아 아니 그보다 공연시간 못 맞춰서 또 매진되면 시발 ;ㅁ;
거의 달리다시피 SHELTER 골목을 빠져나와서 바로 그 뒤에 있었던 -_- 시모키타자와 LOFT 지도를 보면서 정신없이 헤맸다. 어쩐지 지도를 볼 수록 헷갈리는 기분이. 지도에는 "꽃집" 이라고 표시된 건물 외에는 아무런 건물도 안 보이고, 근데 시모키타자와엔 꽃집이 뭐 이렇게 쩔게 많나여!
사방의 빈티지한 옷들에 정신을 빼앗기…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 꽃집이다.
좀 큰 꽃집.
그 바로 왼쪽에 작은 LOFT라는 간판이 보였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동시에 누군가랑 마주쳤다. 좁은 계단에서 서로 잠깐 서 있다가, 그 사람이 그냥 고개를 숙이고 올라오려고 하는 순간,
덥썩 지도를 보여줬다.
"저, 여기가 여기 맞나여"
"ㅇㅇㅇ"
;ㅁ;
맞게 찾아왔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쿠스틱한 기타소리가 들린다. 리허설 중인 듯. 사운드를 체크하던 아저씨가, 날 보고 박스에서 내려온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오늘… 그… 뭐더라, 동그란 러브송 하는 거 맞죠?"
"네. 공연 보러 오신건가요? 누군가, 밴드의 친구분이신가요?"
밴드의 친구분이 보러오는 공연인가!!!
"아, 아뇨… 그냥 홈페이지에서 봤는데요."
수엽 덥수룩한 아저씨는 시익 웃으면서, 공연은 30분에 시작하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얘기해줬다. 시각, 7시 25분. 어떻게 맞췄구나 ㅠ_-
어디선가 상당히 중성적인 분위기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소녀가 혼자 관객없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기타 소리가 청량했고,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그제서야 밀려왔다. 리허설 하던 긴 생머리의 소녀는 금방 대기실로 들어가고, 나는 관광객답게 카메라를 꺼냈다.

시모키타자와 LOFT 내부. 굉장히 작은 공연장이었다.
한국클럽으로 비유하자면 "빵"같은 분위기였는데,
규모는 빵보다 훨씬 작은 공연장.

예쁜 거울.

무대도 작고 아담하다.
사진찍고 있으려니 짧은 커트머리의, 고등학생 쯤 되어보이는 소녀가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냐고 묻다가, 한국에서 구글 검색을 통해 홈페이지를 찾아서 왔다는 걸 알고서, 하얀 멕시칸 원피스의 소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렇게 작은 공연에 그렇게 멀리서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한다고 약간 덧니를 보이면서 웃어보였다. 기분 좋긴 했는데, 상당히 나이어린 뮤지션들이구나.
7시 40분이 좀 지나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정말 나밖에 없던 공연장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내 바로 뒤에 앉아있던 사람은 "딸이 출연한다"고 얘기해줬다. 그러고보니, 모두 친구들을 응원하는 다정한 분위기. 중고등학생 연합 같은 건가! … 라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니 전혀 중고등학생이 아닌 거 같은 사람들이 상당히 보인다. 이쪽 바닥에선 잔뼈가 굵은 사람들인걸까.
그리고 처음 나온 사람은, 내가 들어왔을 때 리허설을 하고 있던 여중생(으로 추정되던)이었다.

이름은 카오리.

카오리.
그렇다. 모모노 카오리가 GOOD~ 마루이 러브송은 사실 카오리/모모/마루/타카하시(이름에 吉자가 들어가는 모양이다-_-)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 딴 어쿠스틱 공연이었던 거시다. 낚였다.
그치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예상한 그대로였던 듯.
카오리 씨는 어딘지 소년같은 분위기의 목소리를 가졌다. 아직 덜 여문 듯한, 그래서 소년과 소녀의 중간에 서 있는 거 같은 느낌. 감성적인 가사들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어쨌든 여기서 노래하고 싶다"고, "휴대폰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휴대폰 문자 메시지에 감동한 적이 있어서 만든 노래다"라고 얘기할 때, 어쩐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리고 난 이때까지만 해도 카오리씨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노래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만든 노랩니다."
네, 네?
뭐 뭡니까 그 미친 동안은?!
두 번째 뮤지션은, GOOD─ 타카하시 씨.

흔들렸지만 이케멘 '-^)b
이 쪽은 확실히 이케멘의 목소리. 어쿠스틱한 기타에 다정한 남자 목소리가 얹히면 이렇게도 매력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조용하고 나직하게 노래하면서도 전혀 풀죽지 않는 노래들이었다. 노래가 정말로 good이라 good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의혹을 잠깐 가졌다.
인상깊었던 노래는 역시
"사실 전 러브호텔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에 이어서, 혼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그녀가 있었는데, 언젠가 어른이 되면 러브호텔에 가자고 약속했었죠. 그 때는 러브호텔이란 장소를 굉장히 동경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러브호텔에 그녀와 들어갈 수 있었을 때, 정말 러브호텔이 엄청나게 좋아졌어요. 그 때 이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그런 '어른'에 대한 동경이 담긴 노랩니다."
귀여웠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공연에 출연한 네 명의 출연자는 모두 ESP 기타 스쿨(폴 길버트가 교수로 있는 걸로 알고 있다)에 다니는 고교 졸업생이었던 거시다 |||OTL||| ESP 기타 스쿨은 전문학교(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다. 뭡니까, 카오리 씨, 마루 씨! 그 미친 동안은 뭐냐구요 ㅠ ㅠ

세 번째 뮤지션은 - 모모 씨.
내 뒤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는 모모 씨의 어머니셨다.
어쿠스틱 기타가 아니라 신디를 들고 나왔고, 신디가 주는 전자적 폭발음만큼이나 굉장히 어른스럽고 폭발력있는 목소리. 아, 호소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 다른 세 명의 뮤지션이 굉장히 달달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고 하면 모모 씨는 애절하고도 약간 몽환적인 음악이었다.
기억나는 노래는, 친구가 리스트 컷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그 충격과 함께 친구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던 노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눈치챘더라면, 손목의 그 상처는 없었을까"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사실 네 명 중에 제일 취향에서 어긋난 분이셨을지도(…)
그리고 뒷 사람들한테 OCD의 불빛이 너무 신경쓰여서 결국엔 찍지 못한 미친 동안 마루 씨. 어쿠스틱 기타와 하얀 멕시칸 원피스가 잘 어울렸다. 카오리 씨랑 비슷한 계열인 거 같지만, 카오리 씨가 미래를 향해 주먹을 쥐는 소년의 느낌이라면, 마루 씨는 하얀 우유같은 소녀 감성. 타카하시 씨는 마루 씨에 대해서 자기 멘트할 때 굉장히 심플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노래도 대체적으로 밝고 명랑하면서도 심플했던 듯. 특별히 가오잡지 않는 가사(굉장히 일상적인!)가 많이 좋았다.
마지막엔 네 명이서 함께 타카하시 씨가 작곡했다던 HELLO GOOD BYE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이게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ㅠ ㅠ 언젠가 훌륭한 뮤지션이 된 그 네 명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 생각했다. (특히 타카하시 씨랑 마루 씨!)

공연이 끝나고 다시 역 앞으로 돌아왔다.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호텔에 가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자꾸 귀를 붙잡는다.


스트리트 뮤지션 츠루 씨.
8월 23일에 시모키타자와 빅 마우스라는 곳에서 라이브를 한다고 했지만, 전 그 때 일본에 없다고 했더니 블로그 주소를 가르쳐줬다. 블로그에서 음원을 다운받아왔다. 같이 들어요, 여러분. 그리고 저랑 같이 비슷한 하늘과 비슷한 풍경을 봅시다.
고마워요, 츠루씨. 덕분에 시모키타자와의 밤은 참 아름다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