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에 대한 관계적 분석 평이한 문화생활



 사실은 서사형 판타지를 정말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쓸 말이 없어서 버텼다. 국문학적으로 분석하라고 해도, 「반지의 제왕」에 문예비평론을 적용할 수 있을 자신도 없었다. 고민하다가, '국문학적'인 것보다는 '문예창작학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반지의 제왕」에는 여자 캐릭터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갈라드리엘 같은 경우는 여자캐릭터라기보다 그냥 성녀聖女고. (페미니즘 비평 같은 건 애적에 불가능하다는 소리도 되겠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들은 사랑을 하고(아라곤과 아르웬 정도), 서로에게 애착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도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 반지의 제왕 1, 2, 3이 개봉했을 때 양재동 근처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코믹월드라는 만화축제에서는 모든 부스가 거의 반지의 제왕 동인지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동인지는 그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관계'. 고등학교 때 내 주변의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반지의 제왕」앞에 격렬한 시각적 로맨스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건 단지 레골라스를 향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레골라스와 아라곤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반지를 위한 하나의 여행을 계속하면서 그들의 사이에 격렬한 우정이 싹트지 않을 수 있겠는가. 플로어를 달리는 농구선수같은 동지애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있는 게 과연 우정뿐일 것인가. 이 관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보통 이런 류의 로맨스를 꿈꾸는 건 대체적으로 여자애들이다. 그것은 「반지의 제왕」에 거의 여자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여성독자(혹은 관객)들은 갈라드리엘에 이입할 수 없다. 완전히 성녀같은 갈라드리엘에게서는 어떤 이입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하면 아르웬이나 애오윈에게도 이입할 수 없다. 결국 이들은 여행의 주축이 아니다. 관객들은 여행을 지켜보지만 아르웬이나 애오윈에게 그 여행은 그들의 여행이 아니다. 이입할 수 없어서 타자로 남는 것보다는 즐거운 서사 위에서 '특등석'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이들의 모든 몸짓들을 '그까짓 애정'으로 해석하면서 낄낄댈 수 있는 것. 이건 소외당한 여자애들의 특권인 셈이다. 관계적 분석이라고 써 놓았지만, 이건 동성애적 해석이다.

 그러면 대표적인 관계들을 중심으로 반지의 제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레골라스와 아라곤의 관계

 가장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건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자꾸 왕이 못 되는 이 매력적인 떡진 머리 남자와 하늘하늘한 금발을 휘날리며 활을 쏘는 엘프 소년의 사랑이야기다. 처음부터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굉장히 많은 역할들을 기대하고, 뒤로 가면 갈수록 이 기대치는 점점 커진다. 나중에는 굉장히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진정한 동료가 되어 있다. 진정한 동료. 이 말에서 느껴지는 불온한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레골라스와 아라곤의 애정이 가장 강렬하게 폭발하는 곳은 역시 전투씬들이다. 레골라스의 가녀린 몸과 활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처럼 주인공 느낌으로 충만한 아라곤의 칼싸움은 또 굉장히 잘 어울린다. 또한 그 가녀림과 주인공 느낌은 마치 일반적 로맨틱 영화나 히어로 영화 속 히어로와 히로인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이들의 관계는 많은 부분에서 역전된다. 특히 멀리서 활을 쏘는 레골라스의 경우 아라곤의 뒤에 있던 적이 아라곤을 공격하려고 할 때 활을 쏘아서 아라곤을 지켜주는 행태를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런 부분들에서 레골라스와 아라곤이 서로 주고받는 "웃음"은 상당히 묘하다. 또한 애오윈을 만났던 로한의 전투에서 절망하고 있는 아라곤을 지탱하고 결국 앞으로 나서게 해 준 건 결코 애오윈이 아닌 레골라스의 힘이었다. 레골라스는 엘프다. 아라곤은 인간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르웬도 엘프가 아닌가. 레골라스와 아라곤의 관계 속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사랑이었다.

 애오윈과 아라곤의 사랑 이야기 틈에서 결국 레골라스가 아라곤을 지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레골라스가 굳이 거기서 아라곤에게 접근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아르웬'이라는 동류의 존재에게 한 번 양보한 아라곤을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질투가 아니었겠는가. 아라곤이 대관식을 올리면서 끝내 곁에 두었던 것은 레골라스였다. 레골라스와 아라곤은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다. '생의 동반자'격인 셈이다.

 이런 관계에서 애정을 빼고 논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아르웬과 아라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때조차도 레골라스는 그들을 지켜주기로 결심한 것에 다름 아니다. 레골라스는 "나의 왕"이라고 아라곤을 부르면서, 아라곤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결심한다는 것은 그와의 관계에 대한 상당한 정도의 확신과 애정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단지 '반지'만을 위해 형성된 관계가 아닌 것이다. 레골라스와 아라곤은 일종의 연인에 가까운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확실하다고 하겠다.


 2. 레골라스와 김리의 관계

 두 번째로 우리를 매혹하는 관계는 레골라스와 김리의 관계다. 레골라스와 김리는 일종의 '라이벌 격' 구도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드워프와 엘프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드워프들이 가지는 어두운 광산, 침울한 공기, 수염과 더러운 듯한 모습과 엘프의 아름다움, 청량함, 고귀함 등은 완전히 상반되는 가치로 보인다. 그런만큼 실제로도 그다지 사이가 좋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커플링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 '결국은 그 벽을 뛰어넘고 애정을 확인'한다는 데에 있다. 김리와 레골라스의 관계성을 확인하게 해 주는 장면 중에 제일 매혹적인 것(또한 여러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법한 것)은 역시 한 명씩 도끼로 베어내면서 숫자를 세고, 그만큼 활을 쏘면서 숫자를 세는 그들의 싸움 방식일 것이다. 서로 싸우면서도 계속해서 서로를 의식하고, 그러면서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게 만든다.

 웬만해선 김리는 애정을 담은 커플링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법한 타입이다. 드워프다. 수염이 길다. 도끼를 쓴다. 키가 작다. 커플링 속에서 여자애들의 우상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멀고 험하다. 하지만 레골라스와 함께 어떠한 파장을 만들어나가고, 서로의 마음을 읽고 문을 막기 위해 뛰쳐나가는 모습은 애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김리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레골라스에게 덤벼드는 소년을 연상시킨다. 자기보다 조금 더 잘난 것 같고 마음에 안 드는 녀석한테 한 번 시비를 걸어보는 느낌이다. 이 시비를 어른스럽게 받아주는 레골라스와 계속해서 시비를 걸다가 결국 그 마음의 진심을 깨닫는 소년. 이 사이에서라면 충분히 사랑이 싹틀만 하지 않은가. 모든 조건은 갖춰져 있다. 거기다가 김리는 나중에 레골라스에게 어느 정도 애정을 가진 상태가 되었을 때에도 충격적인 대사를 내뱉으면서 귀여움을 120% 어필한다.

 왕의 귀환에서 레골라스가 코끼리를 쓰러뜨렸던 그 순간 말이다.

 "하, 한 개로 밖에 안 쳐줄 거야(삐죽)" : 아주 확실하지는 않다.

 이 관계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라이벌도(度)가 정점에 달했을 때 그 라이벌도가 애정도로 바뀐다는 점에 있겠다.


 3. 간달프와 사루만의 관계

 간달프와 사루만은 먼저 동문수학하던 사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간달프가 제일 처음에 도움을 구하러 찾아갔던 사람도 사루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루만은 그런 간달프를 후려쳤다. 탑 위에다가 가두어 놓고 며칠씩 제대로 밥도 주지 않으며 '채찍질'을 했다. 채찍질에서 느껴지는 불온한 냄새는 일단 차치해두고서라도, 사루만은 간달프를 감금했다. 생각해보면 사루만이 간달프를 감금할 이유가 딱히 있었던가. 간달프는 죽을 힘을 다 해서 사루만에게서 탈출해야만 했다. 감금이라는 건 어떤 걸 의미하는가. 탑 꼭대기에 라푼젤이 갇혀있었던 것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였다. 보통 탑 꼭대기에 셋째 공주를 가두어 놓는 왕의 심리는, 너무 아름다운 공주를 누군가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기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루만과 간달프의 사이를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간달프와 사루만은 오랜 세월 동문수학했다.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했다는 것은 그만큼의 속박으로도 이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하게 의지하고 있었으며, 서로가 같은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믿어왔다는 뜻이다. 같은 마법을 사용해서 같은 꼭대기에 도달하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사루만과 간달프의 가치가 서로 달라진다. 한때 같은 길을 보고 있었으나 가치가 서로 달라져서 함께 할 수 없게 된 사이를 보고 우리는 흔히 "헤어진 연인"이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은가.

 이 경우에 사루만이 간달프를 감금하고, 감금까지야 뭐 자신의 적이 될까봐 그랬다고 쳐도, 채찍질하고 염력을 써서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고 "절대로 네가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고 협박하는 행위들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단순한 적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건 일종의 '배신'에 대한 처벌이다. 실제로 간달프는 배신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배신한 건 오히려 사루만 쪽이라고 해도 그렇다. 사루만에게는 자신과 간달프가 같은 가치를 더 이상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간달프와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함께 해 왔던 행복했던 시간들 자체도 증오스러울 것이다. 흔히 '애증'이라고 말하는 상황이 되겠다.

 결국 도망친 간달프는 사루만을 처치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는다. 이건 간달프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사루만의 망령, 사루만과 함께 했던 기억들에 대한 망령에서 간달프는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남은 건 그저 악 밖에 없는 헤어진 연인 사이. 간달프와 사루만은 그런 관계였던 셈이다.


 4. 간달프와 프로도의 관계

 영화의 초반부에 먼저 우리에게 가장 가볍게 다가서는 건 간달프와 프로도의 관계다. 처음에 이들은 마치 스승과 제자 사이, 혹은 삼촌과 조카 사이처럼 보인다. 또한 간달프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프로도를 비롯한 여러 호빗들과 함께 했다. 프로도는 호빗답지 않게 호기심이 많은 호빗이다. 그래서 간달프는 프로도와 함께 길을 떠난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프로도의 그 '호기심이 많은 호빗'적 성질은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간달프는 다시 프로도와 함께 길을 떠난다. 결국 프로도의 여행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건 항상 간달프다. 프로도는 어리다. 작은 소년이다. 간달프는 아주 나이가 많은 성숙한 어른이다.

 일반적으로 소녀들은 아저씨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톨킨의 전작 「호빗」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 보자. 여기선 프로도가 아니라 빌보가 나온다. 빌보 배긴스는 역시 간달프에게 유혹당해서 말도 안 되는 여행을 떠난다. 떠났다가 절대반지 하나만을 주워서 돌아오게 된다. 간달프의 '취향'에 대해서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작고 귀여운 호빗들. 그리고 나이들고 늙은, 마법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듯한 하얀 간달프. 간달프가 단순한 호빗 페티시라고 해도 특별히 이상하진 않다. 계속해서 프로도를 지키면서 케어하려고 하는 간달프의 태도 역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간달프와 프로도가 함께 서 있을 때, 그 그림에서 가장 먼저 집어낼 수 있는 건 프로도의 작은 키와 맑은 얼굴이다. 호빗이라는 종족은 작다. 작고 순수하다. 그만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간달프는 많은 나이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소녀와 아저씨의 러브스토리 못지 않은 배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프로도와 샘의 관계 역시 굉장히 설득력있는 관계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 프로도가 택한 건 간달프다. 간달프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결말은, 결국 이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단 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프로도의 호기심과 간달프의 호빗 페티시는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5. 프로도와 샘의 관계

 반지의 제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명대사라고 기억하고 있는 대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I'm your Sam."

 그렇다. 그는 프로도의 샘이다. 프로도에게 한결같은 충성을 바친다. 마치 귀부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기사처럼. 둘시네아에게 손수건이라도 받아 온 돈키호테처럼. 그런 프로도는 철부지 아가씨처럼 충심어린 샘의 말을 외면하고 골룸을 따라가는가 하면 반지를 끼기도 하고 별의별 뻘짓은 혼자 다 한다.

 샘이 프로도에게 하는 말들에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샘이 프로도에게 충고하는 말들은 결코 '반지를 용암에 넣는다는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다. '프로도가 제대로 길을 가게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다. 샘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프로도라는 개인의 안위다. 프로도가 안전한 것, 프로도가 괜찮은 것, 프로도. 프로도 자체에 대해서 샘은 걱정하고, 프로도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넘친다.

 이런 아가페적 연애의 구도 속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건 한 쪽이 바치는 아가페적 사랑과 다른 한 쪽이 그 사랑의 진정성을 모르고 외면하는 형국이다. 프로도 역시 다르지 않다. 프로도는 일신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샘을 의심하고, 화내고, 결국에는 샘을 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은 프로도만을 찾아서, 프로도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프로도를 다시 찾아온다. 지켜야겠다는 마음이라는 게 중요하다. 프로도를 따르겠다는 마음이 아니다. 샘은 프로도의 샘으로서, 프로도를 케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작고 여린 프로도는 여기에서 공주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 나중에서야 진정한 사랑이 누구인지 깨닫는 공주님의 역할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도와 샘의 긴 여행은 유지되어 올 수 있었다. 샘이라는 기사기 없었으면 프로도는 아마 여행을 마치지 못했을 터이다. 샘의 사랑은 깊고도 넓다. 아마 이 서사를 다 합치고 모든 커플링을 동원해도 샘만큼 깊은 사랑을 가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점은 끝에 가서 결혼하는 바람에 결국 버림받은 프로도가 호빗 페티시 간달프를 따라나서게 했다는 점인데…….


 6. 피핀과 메리의 관계

 피핀과 메리의 관계는 가장 안정적인 관계다. 어떠한 갈등을 겪는게 피핀과 메리의 경우에는 거의 무의미하다. 오래도록 함께 있었으며, 서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다. 처음 만나서 서서히 애정을 쌓아나가는 아라곤과 레골라스의 안정성과는 또 굉장히 다른 안정성이다. 서로의 행동패턴을 이미 다 예상하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모두 파악하고 있다. 삼국지로 따지면 주유와 손책같은 정도다.

 오래 된 부부와 같은 케이스의 관계라고 하겠다. 여행을 떠났을 때도 메리와 피핀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떨어질 수 없다고 앤트 앞에서도 이야기 한다. 메리와 피핀이 함께 있다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지어는 영화 속에서는 둘의 얼굴마저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같은 호빗이고, 같이 움직이다보니.

 그만큼 메리와 피핀은 많이 닮아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도 그렇고 상당히 귀염성을 강조한 모습도 그렇다. 프로도와 샘이 호빗이라는 가벼운 종족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만큼 무거운 모습들을 강조한 관계들을 보여줬다면 메리와 피핀은 호빗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가볍고 발랄한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3편에서 그런 메리와 피핀이 죽음 앞에서 그 가벼움들을 뚫고 가장 진지한 서로 앞에 마주서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시련을 겪지않고 완성되는 사랑이란 없는 법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준다.


 「반지의 제왕」은 모험물이다. 모험물에 로맨스가 빠져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가장 강한 관계라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비뚤어진 시각으로, 흔히 '행간을 읽는다'고 하는 방법으로 「반지의 제왕」을 읽어냈다. 굉장히 많은 나어린 여자애들은 여전히 「반지의 제왕」을 토대로 동인지를 만들어낸다. 위에서 다룬 메이저 커플링 말고도 엘론드X레골라스라던가, 아라곤X프로도 등의 마이너 커플링도 동원해서. 원작을 비틀어서 본다는 건 그만큼의 매력을 가진다. 원작을 비튼 만큼 거기에 다른 서사가 들어갈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은 또 흥분을 가져온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관점은 원작에서 완전히 소외당한 여자애들의 특권이다. 이입할 사람들을 독자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업인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향유'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집에 「반지의 제왕」에 관련한 동인지가 세 부 정도 있다. 세 부 모두 굉장히 재미있는 서사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만화, 일러스트, 소설들이다. 이런 식의 해석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작품들이 더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작이든, 비틀어서 본 작품들이든간에 말이다.

덧글

  • aa 2008/10/07 05:11 # 삭제 답글

    you spin me
  • 달로스 2008/10/07 06:53 # 답글

    BL은 싫어하는데 읽다보니 몰입해버렸습니다;;; 생각해보니 반지의 제왕 씨리즈에선 여자의 입지가 무지 작았네요.
  • 앤윈 2008/10/07 08:39 #

     몰입해서 읽어주셨다니 감사하고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흐흐.
  • 에나 2008/10/07 10:36 # 답글

    밸리에서 보고 왔어요.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제가 느꼈던 주인공들의 애정관계(꼭 연애감정만을 말함이 아닙니다. ^^)를 조목조목 짚어주셨네요. 영화 생각도 나고...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 앤윈 2008/10/07 13:24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 Semilla 2008/10/07 13:26 # 답글

    톨킨 아저씨가 원래 로맨스는 많이 배제했죠..... 하지만..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관계를 읽을 수 있는 것이군요! 멋집니다!!!
  • 앤윈 2008/10/07 14:15 #

     네, 많이 로맨스가 배제되었다는 이야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는 거 같네요. 영화에선 어쩔 수 없이 로맨스를 살려놓았지만. 그런 면에서 그... 사자 벽장 (?) 작가인 루이스랑 많은 마찰을 빚었다는 얘기도 생각나요.
  • 으니 2008/12/08 17:41 # 삭제 답글

    정말 끔찍하군요-_- 원작을 안 읽어보신분이거나, 뭐든지 자기네들식으로 꼬아서 더럽게 해석하는 동인녀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글 같아요^^
  • 앤윈 2008/12/09 00:12 #

     확실히 원작은 안 읽었습니다;
     피터 잭슨의 영화밖에 안 봤어요. 그치만, 작품이라는 건 작가한테 있는 게 아니라, 독자, 시청자, 향유자한테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해석할 권리는 저한테 있는 거 아닐까요. 뭐, 하긴 그렇다고 해도 2차적 해석을 보는 사람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거니깐요 ^.^;
  • ㅇㅇ 2010/04/05 11:26 # 삭제

    원작읽었는데요
    영화보다 더 ㅎㅁ삘나던데.. 특히 샘과 프로도ㅋㅋㅋㅋ
    영화 나오기 전부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남자들의 끈끈한 관계는 여러가지로 해석이 됐었져;
    이런 해석을 싫어하시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비하하는 건 좀-_-
    ...라고 써봐야 비로긴 무개념 댓글이니 이거 읽어보지않겠지ㅋ
    주인장님 보시라고 써두고 갑니닼
  • 예삐 2009/05/23 13:04 # 삭제 답글

    와! 잘바써여!! 2차적해석에 있어서 뭔가 동질감?을느껴요 키키키
    내용진짜 좋은듯!
  • .... 2010/02/10 15:44 # 삭제 답글

    뭔가 반지의 제왕이 아닌 다른사람의 소설이 되어버린듯 하군요.. ;;
  • 하늘바라기 2011/01/06 14:47 # 삭제 답글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조금 무서웠습니다.
  • 엔디 2011/09/19 14:13 # 삭제 답글

    우연히 검색 타고 들어왔다가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정말 날카롭게 찔러서 잘 쓰셨네요~
    엥간해선 댓글도 안남기는데 ... 너무 감동해서 남기고 갑니다!
  • ㅡㅡ 2011/11/21 18:10 # 삭제 답글

    ㅡㅡ;; 이글 쓰신분 혹시 게이 이신가요? ㅡㅡ;; 완전 게이의 관점에서 바라본거 같아서 기분 나쁘네 ㅡㅡ;
  • 사유 2011/12/07 00:17 # 삭제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줄 모른다는게 자랑은 아니죠.
  • 이미지보고 클릭 2011/12/13 08:50 # 삭제 답글

    읽는내내 터져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허힣 2012/04/23 16:02 # 삭제 답글

    큐ㅠㅠㅠㅠㅠㅠ진짜 뭐랄까 정리를 잘해주신것같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감탄하고 갑니다/
  • ㅋㅋㅋ 2013/01/07 00:48 # 삭제 답글

    헐ㅋㅋㅋㅋ
    정말 전형적인 동인녀의 시각이네요.
  • ㅇㅇㅇ 2013/02/09 14:20 # 삭제 답글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지만은,
    나중에 한번 소설을 읽어보시거나 반지의 제왕을 다시 봐보시길 권장합니다..
    인물들간의 로맨스보다는
    현실과 관련된 동료애나 우정에의 비유를 느끼실 수 있을거같습니다.
  • ㅋㅋㅋ 2013/09/06 15:46 # 삭제 답글

    구글 이미지를 검색하는데 이 관능적인 사진이 놔야서 놀랐음...사진 타고 들어오니 재미있는 글을 읽었으며. 동인녀 라는 뜻을 몰라 네이버지식검색해보다가 웃겨 자빠지는 줄 알았음...

    게다가 동인남의 네이년 오픈사전에..

    동인녀의 반댓말. 남성을 뜻함. 야오남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bl(boy's love)를 좋아하는 남성으로서 주로 인터넷에서 활동한다.

    이렇게 나왔는데..주로 인터넷에서 활동한다..쓰러져 자빠짐..ㅋ.ㅋ
  • ㅇㅇ 2013/11/10 07:45 # 삭제 답글

    잘 읽고갑니다~ 호빗을 보고나서 반지의 제왕을 읽고있는데 레골라스랑 김리의 개그나 너무 재밌어서 둘이 잘어울리더라구요 ㅋㅋㅋ 김리가 원수취급하다가도 친해지는 것도 귀엽고 ㅋㅋㅋㅋㅋㅋㅋ
  • ㅇㅇ 2014/07/09 12:05 # 삭제 답글

    거참 반제때부터 톨덕이자 동시에 동인녀로도 살아온 사람으로서글도 재미지지만 댓글반응들이 더 재미지네요ㅋㅋㅋㅋㅋ 너무 진지하셔서 조금 무서웠습니다222
  • ㅇㅇㅇ 2014/12/04 01:58 # 삭제 답글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여기서 언급한 사람들은 다 브로맨스 아닌가요. 너무 진지하게 쓰셔서 식겁했어요;;
  • ㅇㄴㄹ 2017/04/09 23:35 # 삭제 답글

    와 이분 글 정말 잘 쓰신다. 진짜 재밌게 읽고 갑니다. 아무래도 이 블로그에 자주 와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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