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시대의 요정 회화 by 앤윈


리처드 A. 쉰들러(앨러게이니 예술 대학 교수)

요정 그림은 18세기 후반 영국 예술에 확고히 뿌리박고 있는 철저한 빅토리안적 산물로 보였다. 헨리 푸셀리(1741-1825)는 대중적 즐거움과 대중의 지적 고양이 모두 요정 회화에 잠재해 있다는 걸 인식했다. 푸셀리는 새로운 시적 역사 회화를 확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고, 장르의 기초적 어휘를 확립했다 :  순수 예술과 문학의 인용, 민속적 주제의 추가, 공동의 소품적 글로 둘러싸인 중심 서사 장면의 확립(Tomory 100, 109) 같은. 푸셀리는 말하길, 회화와  말의 뛰어난 부분은 분명하게 완성과 정황적 이미지와 독자를 관중으로 전환하는 것에 있다." (Mason에서 인용, 204) 위니프레드 H. 프리드먼의 "셰익스피어 갤러리"에 의하면, 알더만 존 보이델의 셰익스피어 갤러리를 위한 그의 작업 [티타니아와 보틈](1780-90)과 [티타니아의 깨달음](1793-94)에서, 그는 새로운 문학적 회화의 표준을 세웠다. 푸셀리는 마니에리즘에서 유래된 악마적 행위 대혼란 속 나체의 형상에 몰두하는 셰익스피어 요정 연극 초반의 어둡고 극적인 환상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영향은 나중에 빅토리안 요정 회화와 삽화 모두에서 나타났는데, 특히 그가 여러 소품문들을 동시에 처리하는 방식은 중요한 행위로 평가되었다.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도 그의 기이한 우주론에 대한 요정 이미지와 전승된 이야기 에 포함되었다. 푸셀리와는 달리, 그는 큰 스케일의 역사 회화에는 어떤 흥미도 없었고, 조각과 수채화 같은 매체로 일하는 걸 선호했다. 그는 기본적인 자연,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세계의 통치”(Damon에서 인용, 136)에서 요정들을 보았다. [오베론, 티타니아, 퍼크와 요정들의 춤](c. 1785)에서 보듯, 이 예술가에게 요정이란 자연의 숭배자로서, 물질적 땅에 대해 미사를 드리는 사람의 축소판으로 생각되었다. 블레이크는 “요정의 고리”, 다시 말해 자유로운 영혼의 춤을 주재하는 요정의 왕과 왕비를 그렸다. 그의 방식은 아주 작은 참가자들에 오로지 집중하고(평범한 사이즈의 인간과 비교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춤을 추도록 요정들에게 날개를 주는 푸셀리의 방식과는 달랐다.

블레이크는 또한 요정에 대한 영국 가정의 대중적인 전승문학과 관련 맺었다. [고블린](c.1816-20)은 밀턴의 시 “쾌활한 사람”에서 시인이 동이 틀 무렵 요정의 행동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그 결과에 대한 대중의 믿음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 은유(Butlin, I, 397)를 펜과 수채로 그려냈다. 로빈 굿펠로우, 다른 말로 느림보 친구는 그의 일들을 완성하고 난 후 아침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는 가정의 요정이다. 그 뒤에 복수의 요정들이 아침이 밝았는데도 침대에 있는 게으른 여성을 벌준다고 한다. 블레이크는 요정 신화에 대한 다른 참고를 포함했다 ; “ignus fatuus", 혹은 will-of-the-wisp(도깨비불)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는 바보같은 남자의 타락을 조종하고, 요정의 활동을 관장하여 시찰을 돌도록 퀸 맵(인간의 꿈을 지배한다는 요정)을 왕좌에 앉히고, 분리된 우유에서 푸딩의 일종을 만든다.(Briggs, 231, 341-343; 동시에 Adlard, 43) 푸셀리가 문학적인 분위기를 역사 회화에 넣을 곳에서, 블레이크는 미래의 예술가들이 요정 주제를 다룰 때 쓴 몸짓 언어의 도식과 창의적 사용의 규모에 대한 모델을 제공했다. 동시에 블레이크는 예술가들이 환상 예술의 시적 영감을 시각적 은유로 탐색하는 데에 영적인 대부가 되었다.

놀랍게도, 후기 낭만 시대는 요정 회화를 약간 중요한 작업으로 보았다. 헨리 싱글톤(1766-1839), 헨리 하워드(1769-1847), 프랭크 하워드(1805-66), 조슈아 크리스탈(1767-1847) 같은 예술가들은 작은 규모의 작업 전통을 이어갔다. 이 작업들은 작았지만 우세한 타입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동식물군의 세계와 아주 가깝게 연결된 블레이크와 푸셀리의 소수의 작품들을 통해 지속되었다. 요정 이야기의 더욱 생산적인 확장은 월터 스콧 경(1771-1832), 나단 드레이크(1766-1836), 토마스 크로프톤 크로커(1798-1854), 토마스 키이틀리(1789-1872)같은 민속학자들의 글에서 나왔다. 가장 중요하게, 제이콥과 윌리엄 그림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Kinder-und Hausmarchen)의 영어 번역이 1823년에 나타났다. 이 시, 연극, 옛날이야기, 요정이야기를 망라하는 빅토리안 시대의 다양한 콜렉션의 출판물은 요정 화가들과 삽화가들에게 셰익스피어적 전통에 대한 대안적 문학 소스를 제공했다.

아일랜드인 예술가인 프랜시스 댄비(1793-1861)와 스코틀랜드 예술가인 데이비드 스캇(1806-1849)은 낭만 시대 요정회화의 일반적 창의력 부족에 대한 두 가지 특별한 예외를 대표했다. 댄비는 스위스에 혼자 틀어박혀서 [한여름밤의 꿈](1832)속 장면의 수채화를 두가지 버전으로 그렸다. 작품은 블레이크적 단순함을 통해 달빛이 비추는 풍경을 창의적으로 규모를 사용하도록 유리하게 환기했다.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장면 속 요정의 활동을 엿듣는 듯한, 혹은 비밀스럽게 상연되는 이슬 젖은 원형극장 같은 환상을 제공했다. 반대로 스콧은 푸셀리의 연극조와 블레이크의 시적표현의 혼합물에 특유의 형이상학적 괴팍함을 접목했다. 그는 [아리엘과 캘리번](1837), [새벽에 도망치는 퍼크](1837) 등의요정 회화들에 의도적으로 비대칭적인 구성을 통해 회화적 서사를 만들었고, 혁신적으로 몸짓 언어와 표현을 사용했고, 억세게 그림 표면을 칠했다. 아무튼 댄비의 요정회화도 스콧의 요정회화도 즉각적인 효과 이상을 왕립 미술원과 런던 예술계에 미치지는 못했다. 환상풍경 회화의 그만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댄비의 [매혹의 섬](1825)과 [일출을 향한 나무 님프의 찬송]가(1845)는 학자계급 내부에선 은밀한 외면을 받았고 이에 반해 스콧은 절은 스코틀랜드 예술가 중에선 전설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분리된 생활을 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아일랜드 예술가 다니엘 맥클리스(1806-1870)의 작품은 더 많은 학계와 요정회화 사이에 더 성공할 수 있는 연결, 그리고 낭만 예술에서 빅토리안 예술로의 이동을 대표한다. 그는 요정 그림에서 그의 캐리어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빨리 깨달았다 ;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소묘는 토마스 크로프톤 크로커의 남아일랜드의 요정 전설과 옛날 이야기(1826) (Ormond, 28)를 W. H. 브룩이 판화로 만든 걸 그린 것이었다. 이 젊은 예술가는 1828년에 왕립 미술원에 진입했다. 1830년대 초, 그는 역사 요정 회화를 포함한 역사 장르 회화에 대한 특이한 해석으로 관심을 옮긴다. 그의 회화 [보틈의 각성](1832)는 인간으로 돌아오면서 불행하게 얼굴을 찡그린 보틈에 포커스를 맞춘다. 하지만 그는 위협적일 정도로 장난기 넘치는, 주인공의 머리 양편에 위치해서 당나귀 귀가 있던 자리를 시사하며 그의 짐승 같았던 자아의 변화에 대해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두 요정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맥클리스는 발작적으로 비추는 초자연적인 빛 속에서, 밤에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는 세부적인 서사 -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화해 장면을 오른쪽 위 구석에, 독버섯을 둘러싼 요정의 고리 춤을 왼쪽 구석에 - 를 끼워넣었다. 이 예술가는 그만의 어두운 상상으로 꾸민 작업을 통해 헨리 푸셀리의 예시에 응답했다. 하지만 이 초기 작업은 어떤 언론의 비평도 받지 못했기에,  이후의 요정 회화에 대한 그 중요성을 측정할 수 없었다. 맥클리스는 이때 더욱 큰 비평과 대중적 성공을 [사과가 떨어지는 밤](1833)과 [바론 홀의 성탄](1838)과 같은 역사 장르 회화에서 찾았다.

맥클리스의 예술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소스는 게르만 메르헨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와 루드비히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였다. 그들의 독일식 스타일은 초기의 작품 중 에드워드 불워리튼의 [라인의 순례자](1834)에 그린 “판과 요정”의 삽화에서 볼 수 있다. 성공한 이후 그는 40대 초반에 그리던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햄릿에서 프리드리히 데 라 모트 푸케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 [운디네](1843)를 통해 게르만적 “요정” 주제로 돌아왔다. 장면의 포커스는 운디네의 연인인 크리스천 기사 홀트브란트와 운디네의 아버지인 물의 요정 퀼레보른의 대치 가운데에서 화해시키려는 운디네의 반응에 맞춰져 있다. 작품 속에서 요정들은 동작에서 오직 지엽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있거나, 나뭇잎 뒤에 둘러싸여 소심하게 임박한 충돌을 경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에 그녀의 남편인 부마 알버트가 환상 회화에 대한 분명한 지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 영국 대중이 독일 문화에 대해 가지는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 저번엔 삽화 얘기가 많아서 만화 밸리로 보냈는데, 이번에는 역사 장르 회화 얘기가 많아서 역사 밸리로. 이거 뭐, 어디로 보내야 될지 도통 알 수가 없군요.


매혹의 예술 : 빅토리안 요정 그림의 발전 - 도입 by 앤윈


리처드 A. 신들러(앨러게이니 예술 대학 교수)


네 달콤한 숨결은 내 돛

꽉 채우던지 아니던지 내 계획은 실패했어

어느쪽이든 부디, 이제 나는 원해

강요하는 영혼, 매혹하는 예술

윌리엄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5장, 에필로그



그의 마지막 스피치에서, 프로스페로는 이 만연한 판타지의 환상을 유효하게 하려면, 청중과 연기자가 친밀하게 결탁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챘다. 빅토리안 요정 화가들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그들이 생각해 낸 “요정의 영역”에 감탄하는 관중을 위해서 이 비슷한 지원 관계를 지켜냈다. 그들의 열렬한 팬들은 다양한 권위자들- 빅토리아 여왕, (루이스 캐롤로 더 잘 알려진)찰스 도지슨,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존 러스킨, 그리고 사무엘 카터 홀 같은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요정 그림은 19세기와 20세기 초 도처에 왕립 미술원 전시회들에서 자주 나타났다.



빅토리안 초기 아티스트 대부분은 그들의 작품 주제를 셰익스피어의 연극에서 따왔다. 가장 현저히 드러난 건 한여름밤의 꿈과 템페스트, 그리고 밀턴과 스펜서의 시다. 그들은 대개 이 작업에 전승된 이야기와 요정 이야기에서 따온 창의적인 디테일을 추가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더욱 늘어난 독자들에게 요정 이미지는 일러스트 책이나 잡지를 통해 드러났다.



예술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요정 그림을 그렸다. 다니엘 매클리스, 리차드 다드, 조셉 노엘 파튼 같은 예술가들은 요정그림을 비평과 대중적 인정을 얻고 그들의 전문적 캐리어를 쌓기 위해 선택했다. 대드와 파튼은 요정 주제를 일생의 열정으로 가져갔다. 존 안스터 피츠제럴드, 존 시몬스, 로버트 허스키슨, 존 앳킨슨 그림쇼 같은 예술가는 에로티시즘과 환상적 형상이 섞인 요정이 등장하는 그들의 작은 판타지 작품들의 대중적 추종자들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윌리엄 에티, J.M.W 터너, 에드윈 랜드시어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은 1840년대에 장르의 대중성의 이점을 이용해 그들 자신이 만든 요정나라를 그렸다. 라파엘 전파 예술가인 존 에버렛 밀레이, 윌리엄 벨 스콧, 아서 휴즈는 다양한 성과로 그들과 관계한 요정 주제의 자료에서 흥미를 찾았다. 세 번째로 언급한 휴즈는 판타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해졌다.



모든 예술가가 학술적인 캐리어를 대중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길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조지 크루익셩크(?)와 리차드 디키 도일은 한 세기 동안 빅토리안 요정 삽화 지배시기를 성공적으로 창립했다. 크루익셩크의 그림은 섭정 시대의 풍자적인 공격과 빅토리안 초기의 도덕적 브로마이드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도일은 그의 삽화를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소설에 싣고 풍자적인 저널 <펀치>에 기여하면서 대중적 매체에서 빅토리안 혁명이 일어나게 했다. 1870년, 도일은 그의 형제 찰스 알타몬트 도일과 아서 휴즈,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포함해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 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세기 말, 아서 랙햄, 에드몬드 듀락, 존 딕슨 바튼, 헨리 저스티스 포드, 로버트 애닝 벨, 제시 M. 킹, 그리고 로빈슨 형제(찰스, 윌리엄 히스, 토마스 히스)는 흑백을 사용해 요정 어휘에 대해 다양하게 세련된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이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의 소설 삽화와 요정 이야기 콜렉션, 전통문화 연구, 2절판 책에 새긴 것들, 대중 잡지를 통해 요정 그림의 인기에 기여했다.



||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내용이니 만화 밸리로 보냅니다.



정봉주 이 고자오빠 일어나요♡ by 앤윈

‘섹시즘’에 대한 논란이 진행된 지는 꽤 오래 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억압을 내면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내게 되는 것도 익숙한 현상이다. 여성들은 자신감을 얻기 위해 성형을 한다고 말하고, 다이어트를 자기 관리라고 말하며, 내적 기준을 여성 억압의 기준과 일치시켜서 세계와 자신을 재단한다.

 

싸이월드의 ‘나도 얼짱’ 운운하는 게시판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 10명당 2명 정도로 남성도 끼어 있는 듯 하고) ‘셀카’를 전시한다. 그 글에 가장 흔하게 달려있는 문구는 자신의 간단한 프로필과, 얼굴을 평가해달라는 식의 메시지다. 개인 홈페이지(및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에는 최대한 일정한 미적 기준에 맞게 보이려는 화장과 각도의 ‘셀카’들이 넘쳐난다. 이 시선들은 당연하게도, 굳이 얼굴에 한정되지 않는다. 조금 시선을 돌려보면, 금요일과 토요일 밤, 홍대와 강남의 클럽들도 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늘씬한 다리’와 훅 파인 클리비지 셔츠 안으로 보이는 ‘슴골’. 누가 봐도 괜찮은 여자, 화끈한 여자가 되면서 이 여성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획득한다.

 

Lezhin.com의 운영자 레진은, 한국 사회에서 ‘겉으로는’ 터부시되는 성이라는 주제를 잡고 다양한 글들을 공개한다. AV 배우에 대해 잡상들을 쓰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다 본 ‘꼴리는’ 영상물들을 대거 올리기도 한다. 이 남성 블로거가 방문자 수 몇 힛이 다가온다며 기념일을 제시하면 이 블로그를 보던 수많은 여성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조공’을 바친다.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치거나 엉덩이를 다 드러내고 혹은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노출하고는, ‘***힛 축하한다’ 거나 ‘레진 이 고자오빠 일어나요♡’ 라거나 그런 메시지를 함께 써서 사진을 찍어 보낸다. 레진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가슴에 쓰는 건 흔한 일이다.

 

그루피들의 심리는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폴리티컬 그루피로 주목받았던 오바마 걸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http://www.youtube.com/watch?v=wKsoXHYICqU&feature=player_embedded) 이 언니의 사고 기반에 정치적 지지가 없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그녀는 오바마가 말한 ‘변화’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레진에게 조공을 보내는 사람들은 정말로 레진의 글이 재미있다고 생각할 거고, 좋아할 거다. 이명박 정권이 정말로 싫을 것이며, 정봉주의 석방도 진심으로 원했을 거다.

 

‘비키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얘기한 나꼼수 측의 쌈마이함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사진을 찍은 그녀들의 태도다. 그녀들은 사진을 요구받았기 때문에 그 말에 부응해서 ‘섹시’하게 보일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성’이 강조되는 방식(립스틱으로 글씨를 쓴다거나)을 택했다. 이 여성들은 성욕이 감퇴된다는 정봉주를 위해서 ‘봉주 이 고자오빠 힘내요♡’ 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자신 스스로 남들에게 바라보여지는 ‘대상’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 대부분의 여성들이 보여지는 이미지가 그렇듯이, ‘물건 취급’이 된 것이다.

 

그녀들이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경찰력 투입에 저항하기 위해 옷을 벗는 일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때 옷을 벗은 여성들은 사회적 통념을 도구삼아서 저항하려고 했다. 옷을 벗은 여성들에게 설마 손을 대서 연행하려고 할 것인가, 자본의 폭력은 그렇게까지 할 것인가에 대한 승부수였다. 슬럿 워크와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슬럿 워크는 사회적 통념 그 자체에 저항하기 위한 시도다. ‘어때, 나 섹시하지?’ 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이던 네 맘대로 건드리면 살려두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레진에게 조공을 바치는 사람들도 다 이해할만한 사람들이다. 극단적으로는 장박로이드 같은 데에 가끔 올라오는, 자발적으로 성기 사진을 ‘인증’해서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 않던가. ‘훌륭한 물건’으로 취급받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껴 온 사람들이 그 이상을 사고하지 못하고 ‘더 훌륭한 물건’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 속상하고 열 받지만 그게 자본주의가 여성들한테 한 짓이다. 또 그 여성들은 그럴 때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가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걸 경험한 사람들이다. 한국에도 새로운 종류의 폴리티컬 그루피가 등장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상화를 의제 그 자체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글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지 않는다. 비단 글만의 문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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