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 거울 시간의 잔상

2011. 11. 25 악어의 맛
2012. 01. 27 성문너머 코끼리
2012. 01. 27 종의 기원
2012. 01. 27 왕자와 거지
2012. 03. 30 히스테리아 선언
2012. 05. 25 너의 낡은 캐주얼화
2012. 07. 27 로보를 위하여
2012. 10. 20 사형집행일
2012. 11. 30 밥줄을 지켜라
2013. 03. 01 노병들
2015. 01. 31 꼬리에는 뼈가 있어




2 청소년 문학 웹진 글틴

2014. 06. 16 바리케이트와 개구멍



3 주간경향

2015. 01. 13 뭐부터 하지, 왜 정리가 안 될까


2015. 02. 17 여직원은 꼭 센스있고 착해야 하나요


2015. 03. 24 실수 자주 하는 덜렁이를 위한 변명



4 단행본

악어의 맛


이웃집 슈퍼히어로




동거의 문 앞, 독거의 마음 오늘 날씨

2년 간의 동거를 마치고 시작한 1년 간의 독거생활이 슬슬 끝나간다. 끝나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나는 토요일부터 새 동거를 시작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삿짐센터에 전화에서 두 방에 있는 물건을 합쳐서 포장이사를 하는 데에 드는 가격을 물어봐야 한다. 요 며칠 계속 이 방에 들어와서 살아 온 1년이 스쳐지나 기이한 기분이다.
 
집에서 나와 살면서부터 대체로 나는 동거를 했다. 가난한 집에서 그다지 부모가 달가워하지 않는 독립을 하는데 보증금 따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읽은 소설 속 미래사회가 보증금도 월세도 없이 모두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하는 걸 보고 나는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게 매우 억울했었다. 물론 현실 22세기가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야 없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계속 ‘같이 살’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독거 직전의 동거는 2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애인과 집을 합친 것이었다. 나는 마침 대학원을 수료했기에, 그의 학교와 가까운 회기동으로 집을 옮겼다. 방은 원룸이었고 1인용 침대가 있었다. 그가 군대에 가기 전에 했던 반 년 간의 동거 생활 동안에도 그와 나는 1인용 침대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잠자리는 한 뼘이면 충분하다’는 <한여름밤의 꿈> 속 라이샌더의 대사를 생각하며 이 상황이 매우 로맨틱하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동거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역시 외롭지 않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 2년 간의 동거 내내 욕실 문을 열고 수다를 떨면서 샤워를 했다. 집 안에서 나는 언제나 무언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재미있는 걸 발견하면 바로 애인을 불러서 함께 감상하였다. 애인이 좋아할 법한 음식들을 해서 때때로 같이 밥을 먹는 것과 그가 내게 카레처럼 쉽고 간편한 요리를 해 주는 것이 모두 즐거웠다. 먹는 것과 자는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굉장한 친밀감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다. 높이가 영 맞지 않는 작은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것까지도 좋았다. 나는 집에 들어오면 ‘가정집 분위기’를 내겠다며 공중파 프로그램을 틀어놓곤 했다. 그건 마치 소꿉놀이 같았다.
 
그러나 모든 문제는 동거가 소꿉놀이가 아니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방금 또 집주인에게 제발 청소 좀 해 놓으라고 이런 상태로는 집이 안 나간다고 잔소리를 들은 나의 청결수준은 구남친의 청결수준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결벽증이라고 짜증을 냈고, 그는 내게 왜 청소를 하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내가 밥을 먹고 혹은 커피를 마시고 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어했고, 나는 청소기 소리가 너무 싫어 고양이를 끌어안고 침대 위로 대피해 있곤 했다. 내 고양이의 날리는 털에 대해서도 나는 ‘고양이랑 살면 털 날리는 거 어쩔 수 없는 거지’ 정도의 안이한 청결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옷을 (정확히는 자신의 옷만을) 매우 열심히 옷장 안에 집어넣었다. 물론 고양이의 귀여움에 고양이를 베란다에 별거해서 키우자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 계획은 지금도 정말 도무지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베란다는 춥고 동물은 가족이라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물네 시간 중 열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만큼의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지고 왔다. 그가 다른 데에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돌아와도 나는 그의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그건 아마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의 짜증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웠고, 그는 나의 우울을 지켜보기 힘들어했다. 그러다보면 짜증도 우울도 한층 더 심각해지기 마련이었다. 작은 갈등상황에도 나는 깊이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했고, 그는 분노할 때마다 점점 그 분노를 제어하기 힘겨워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같이 살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내 고양이가 그에게 맞은 날, 나는 그와 떨어져 사는 게 옳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일단 나는 돈이 없었다. 그와 싸우고 나서 나는 종종 그의 집 현관 앞 복도에 누워 잠을 청했다. 물론 너무 추워서 잠이 들 수는 없었다.
 
내가 낸 책의 인세가 입금되고 나서 나는 그 돈을 밑천 삼아 그에게서 독립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나는 독거 생활에 돌입했다. 나는 집에 나 혼자 있는 시간들이 숨이 막히도록 행복했다. 드디어 내게도 온전한 내 방이 있었다. 텔레비전을 틀었고 집에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 영화를 보다가 피우고 싶을 때 담배를 피웠고 혼자 사는 성인여성답게 바이브레이터라도 살까 고민하며 성인용 쇼핑몰을 뒤져보기도 했다. 그에게서 독립한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때 우리는 결별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내 독거생활에 지쳐버렸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내가 독거생활을 꿈꿨던 가장 큰 이유는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나의 어머니는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설치하고 계절마다 침구를 갈고 반찬은 그릇에 담아 내놓으며 상에는 삼첩 이상의 반찬이 올라가고 구겨진 옷은 다리고 집안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방에 들어왔다가 방 꼴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 이후 다시는 내게 청소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만든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엄마는 내가 불 꺼진 부엌에 허리를 숙이고 서서 시궁쥐처럼 젓가락만 들고 김치찌개 건더기를 건져 먹는 걸 싫어했다. 내가 김치찌개를 그렇게 먹고 있는 걸 보면 엄마는 부엌 불을 켜고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굳이 그 수고를 마다 않으며 김치찌개와 밥을 차려주곤 했는데, 김, 김치찌개, 나물 하나까지 정갈하게 차려진 그 밥상을 보면 나는 식욕이 뚝 떨어졌다. 나이가 들어도 그 버릇은 없어지질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과 둘이 살고 있을 무렵 일하던 토킹바에서 나는 토킹바 냉장고에 들어있던 김치를 집어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어쩌다 사장이 밥을 사주면 폭식을 했다. 복 없이 먹는다고 잔소리를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바 부엌에 덫을 놓아서 쥐를 잡으면 차마 뜨거운 물을 부어 죽이지 못하고 까만 비닐봉지에 넣어 밖에 내놓았다. 죽을 거라는 걸, 어쩌면 분쇄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고통스러웠다. 아마 나처럼 그냥 김치나 먹고 싶었을텐데.
 
그 당시는 개인적으로도 크게 고통스러웠을 때라 언젠가부터는 내 손목을 스스로 칼로 긋는 정도로까지 몰렸다. 혼자 있으면 울었고 집에 있으면 잤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삶을 견딜 수가 없어서 고통스럽다는 얘기를 불쑥불쑥 SNS에 올렸다. 그러다가 몇몇 끔찍한 사건들을 겪기도 했다. 청소도 하지 않았고 밥도 먹지 않았다. 하루에 술을 마시는 한 끼 정도를 먹었다. 이 더러운 방에 사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어떻게든 순간적인 행복감을 제공해 내 삶을 연장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인터넷에 올렸다. 영광에 살고 있는 지인이 김치 정도는 보내줄 수 있다며, 내게 반찬들을 보냈다. 반찬을 받고 나서 나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놀랐다. 원래 그녀가 손이 큰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1인 가구 우울증 환자가 보기에 그 반찬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손이 많이 간 정성스러운 반찬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반찬들을 그냥 무작정 먹어치우는 건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반찬을 집에 있는 모든 그릇들에 다 옮겨 담았다. 이 반찬들에 국이 없다는 건 너무 어색하다는 생각에 국까지 끓여서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음식을 보내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함께 소설을 쓰는 동료 중 한 명은 강원도에서 손수 생산한 맛있는 피망과 고추들을 보내주었다. 나는 그 피망과 고추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보내준 사람들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것들을 ‘맛있게’ 먹어야만 했다.
 
그날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나는 무엇을 먹고 싶은지를 생각해냈다. 집에 반찬도 많겠다, 처음에는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해장용 콩나물국, 오징어찌개, 배추무국. 고등어 살을 하나하나 발라내서 고등어 밥을 해 보기도 하고, 고등어 조림을 해 보기도 하고, 갈치를 구워보기도 했다. 바지락을 사서 오일 파스타를 해 보기도 했고 꼬막을 사서 꼬막을 무쳐보기도 했다. 집 앞 마트 뿐 아니라 좀 더 멀리 있는 재래시장까지 진출해서 재료들을 샀다.
 
요리를 하다 보니 부엌은 금방 지저분해졌다. 양파를 산처럼 쌓아놓고 또 파를 썰 수는 없었기에 나는 부엌을 치우면서 요리를 했다. 한 칸짜리 싱크대 위에서 이리저리 재료들을 담아놓고 가스레인지 앞에 여러 양념들도 구비해놓았다. 생강을 넣어 돼지 누린내를 없애고 청주를 마시는 대신 음식에 넣는 사치도 부려보았다. 설거지는 매우 귀찮은 일이었지만 매일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밥을 먹는 동안 고양이 털이 음식 위로 날아다니는 게 힘들었기에 청소도 했다. 방 안쪽부터 바깥쪽까지 쓸어낸 다음에는 행주로 상을 닦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그릇 가게를 지나가다가 나는 충동적으로 면기(麵器)를 샀다.
 
속이 깊이 파이고 입구가 넓은 그릇이었다. 그냥 국그릇에 담아먹을 수도 있고 냄비에서 덜어먹을 수도 있는 면을 예쁘고 맛있게 먹기 위해서 굳이 더 많은 소비를 한 셈이다. 흰 면기와 투명한 맥주컵을 사 오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일렁거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할 생각도 없었던 이상한 쇼핑이었다. 그냥 때가 탄 머그컵에 맥주를 마셔도 괜찮을텐데.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 사이 집을 다 둘러보고 간 이삿짐센터에서는 내 짐이 0.6톤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이라는 비좁은 동네에서는 1톤에 다 담기지 않는 작은 살림살이로도 나만한 계집애가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취직을 했고 내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친구를 만나고 월급을 받으면 새 옷도 산다. 그리고 요리를 할 때마다 김치를 그릇에 옮겨 담는다. 또 엄마를 생각한다. 1년 간의 독거생활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결국 인간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소•빨래•요리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 행동이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할 수밖에 없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왔지만 자신과 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 일상적 노동을 수행해 온 1년이 지나자 나는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열아홉 살 때 나는 간절히 스물아홉 살이 되고 싶었다. 그때쯤이면 나는 삶의 요령이 단단하게 생겨서 내 삶의 고통들을 모두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그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해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나는 새 연인과 새로운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책을 주겠다던 동네 주민인 친구에게서 상당한 양의 책을 받아 왔다. 나는 무겁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책이 가득 찬 트렁크 두 개를 덤쑥 들어올려 집에 밀어 넣었다. 새 연인은 입이 그리 까다롭지 않아 나는 여전히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요리해도 될 것이다. 청결문제에서도 그렇게까지 까다롭지 않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이나, 독거생활을 거친 나는 이전보다는 더 강해졌으리라. 집세는 37만원에서 27만원으로 줄어들었다. 공동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텔레비전을 볼 것이다. 더 넓어진 부엌에서 신나게 요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말대로 온 만큼을 더 가면 난 거의 예순 살이다. 숨 쉬는 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되듯이 마음의 운동도 그만두면 근육이 퇴화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수고가 많겠지만 이 1년간 그대로 수고가 많았다. 독거의 마음으로 새 동거인을 기다리는 건 긴장되고 떨리지만 또 씩씩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밤에 자기 위해 누울 때마다 마음 속에 속살대는 목소리. 이사 가자, 우리 예쁜 서영이.

시립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어느 입장

제가 대리하고 있는 정**가 얽혀있는 사건들에 대해 여러 단체와 개인들이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노동자연대 · 대책위 · 류한수진 씨 · 전지윤 씨 및 변혁재장전이 입장을 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이 개별의 입장들이 그다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고까지 봅니다. 

 

정**의 대리인 여부를 떠나서 사건을 지금부터 계속해서 꾸준히 지켜봐 온 한 명의 성원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정**의 대리인이 아닌 이서영으로서 기술하는 것입니다. 

 

여러 맥락들을 고려해서 쓰다보니 긴 글이 되었습니다. 부디 끝까지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4년 11월 25일 뉴스1이라는 언론에 [후배에게 '야동' 보여준 교지 편집장…서울시립대에 무슨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http://news1.kr/articles/?1969132)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는 ㄴ씨로 지칭된 당사자 정**에 대해 “그런데 ㄴ씨 측과 A단체가 "ㄱ씨는 과거 성매매를 한 사실이 있다"며 ㄱ씨의 사생활이나 A단체 내에서의 태도를 문제삼는가 하면 ㄴ씨 측이 "오히려 여성인 ㄱ씨가 남성인 ㄴ씨를 성추행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문건을 여러 언론사에 배포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기사에서 ㄴ씨로 서술된 정**가 주요하게 제기한 건 중 하나가 <정**는 ㄱ씨가 “성매매를 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기 위한 명예훼손 문제였습니다. 법원은 정**가 피해호소인 ㄱ씨에 대해 “과거 성매매를 했다”고 말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ㄱ씨는 이 건에 대해 ‘(잘못 알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이미 공개적으로 사과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건에 대해서만은 명예훼손 혐의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른다면 만약 ㄱ씨가 이미 사과했다 밝히지 않았다면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판결문을 읽고 기사를 썼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이기에, 저희는 언론중재위에 해당 기사에 대해 정정보도 요청을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왜곡된 기사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 홈페이지에 이 기사가 링크된 것을 본 정**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원 상황이 복잡하다보니 서울시립대학교 학생들은 이 기사를 읽고 ㄱ씨가 ‘성매매를 했다’고 독해했고, 성매매여성인 ㄱ씨를 비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원가해자인 교지편집장 이**과 정**을 구분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입에서 이 사건은 ‘후배한테 야동이나 보여주는 선배나 성매매한다는 후배나 잘들 논다’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 얽혀 있던 관계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진실에 근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사회 내부에서 올바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제 나름의 방법으로 분투해 왔습니다. 대체 어쩌다가 수많은 선의들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대책위원회의 입장에 대해

지난 11월 27일에 발표된 대책위원회의 입장은 ‘당연히 차안에서 그들이 얘기하는 성추행 같은 일은 없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사실은 이러했다’거나 ‘반성폭력운동의 관점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진실만을 주장했다’는 서술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과 저는 단 한 번도 ㄱ씨를 가해자라고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정**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ㄱ씨에 의해 당한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그랬습니다. 당사자들끼리의 진술이 어긋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상황에서 구제해 줄 주체가 부재했으므로 결국 자기구제를 위해 재판 및 소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진술이 어긋나는 상황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영화 「라쇼몽」은 거짓말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사건이 있을 때, 사건을 두고 진술은 다양하게 어긋나지만 일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합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사건을 왜곡할 수도 있죠. 우리는 그런 복합적인 상황 위에서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개인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지금껏 대책위에 대화를 요청해 왔고, 무언가 이야기를 해 보자고 제안해 왔던 것입니다. 

 

초반에 ㄱ씨의 대리인이었던 류한수진 씨부터 지금 대책위에 이르기까지 저희는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당해 왔습니다. 재판을 미루면서 대화를 서너 번에 걸쳐서 요청했고, 정**는 재판에 대해 자신의 입장서를 발표하면서까지 공식적으로 대책위에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대책위에서는 단 한 번도 저희의 요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몇 번의 거듭된 시도 끝에 받은 것이라고는 “우리의 사건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피해호소인이야 직접 대화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대화를 요청한 대상은 대책위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피해호소인이 대리인을 선임하고 대책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대화 및 해결을 하기 위해서이므로 저는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법정에는 가지 말라니,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최근 대책위에서 나온 입장서를 보고 나서야 저희는 대책위 측에서 지금껏 저희와의 대화를 거부해 왔던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대책위에 소속된 여러분들께서는 한쪽의 의견을 배제해 버린 사건의 ‘진실’이 이미 ‘총체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저 역시 제가 이해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고, ‘상(象)’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진실’이라는 화두가 이 사건에 떠올라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진실이라는 표현을 차용합니다.

 

처음 ㄱ씨가 사건에 대해 폭로했을 때 정**가 그 글에 단 댓글은 ‘성추행은 당신이 나한테 했지’ 였습니다. 대책위의 서사대로 폭로를 막기 위한 대응으로서 단체와 미리 상의하여 사건에 대해서 음해하려는 수작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정**는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해당 글을 보자마자 되려 자신이 피해자였던 사건이 곧바로 연상되었다는 서사 쪽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정**는 ㄱ씨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입은 사건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을 하였고, 그다지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법정에서 진술된 바에 따르면 정**는 술에 취한 ㄱ씨를 시립대학교 교지동아리방까지 실어나르기 위해 다함께 회원의 차에 탔고, 그 안에서 ㄱ씨는 정**를 성추행했습니다. 정**의 일관된 거부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도착한 교지동아리방 안에서도 ㄱ씨는 정**를 성추행했습니다. 

 

대책위는 ‘A, C, E는 조직보위라는 공동의 목적 하에 허위진술과 허위증언을 했다’고 서술합니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맑시즘은 당시 다함께(현 노동자연대)의 행사였습니다. 당연히 모든 목격자가 당시 다함께일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근거로 이 모든 진술이 조직보위를 위해 허위로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 너무 궁색한 주장입니다.

 

자신이 하지 않은 성희롱에 대해 했다고 지목당한 정**이 자신이 ㄱ씨에게 당했던 성추행의 경험을 연상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대책위의 입장서 중에는 ‘겨우겨우 용기 내어 사실을 폭로해도 그 중의 일부밖에 얘기하지 못한다. 사실을 얘기해도 그것이 (그들에게!) 진실로 확인되기 전까지 피해자는 가해자조직의 보위나 가해자의 명예를 위해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몰리거나 2차가해.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갖은 가혹한 수모를 겪는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는 이전에 대리인으로 선임한 Duckling Hyeon에게도 자신이 겪은 성추행에 대해서 처음에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폭력이 대책위에게 진실로 확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는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파렴치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대책위의 입장서에는 법정이 ‘심지어 그것이 가해자의 증언임에도 불구하고 채택’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조사기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지목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해지목인의 증언은 소명될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져야 합니까?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리라고 봅니다. ㄱ씨가 가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ㄱ씨가 가해자로 지목당했지만 전혀 그렇게 반응하고 계시지 않으니까요.

 

 

어느 한 쪽의 말만 전적으로 모든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히 위험한 일입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사건의 당사자 세 명 중 두 명의 진술이 일치하며 두 명이 사건의 상을 공통되게 그려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추론해 봤을 때 대책위에선 가해자 두 명의 진술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맞춘 것으로서 신뢰할 수 없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두 명의 남성을 따로 접견해보고 그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진술을 청취하여 그들의 말에서 일관성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대책위가 가해자의 진술을 결코 신뢰할 수 없다며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성명서를 내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책위가 그런 일반적인 검증 절차를 거쳤다고 여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무했습니다. 사건의 진술은 맞춰보지도 않고 가해지목인의 발화 자체, 그 발화를 들어보려는 이들의 존재 자체를 비방하고 다닌 것이 대책위의 활동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대화를 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요청도 무시해 왔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도대체 무슨 대책이 나올 수 있습니까. 

 

당연히 대책위의 여러분들은 ㄱ씨의 진술을 신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일치하는 두 명의 진술을 거부할만한 충분한 맥락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대화를 시도하거나 양측이 함께 조사를 받을 수 있는 단체를 찾아다녀야 할 것입니다. 

 

이들이 ‘가해지목인’이라는 것 외에 진술이 신뢰되지 않아야 할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가해지목인’이 아니라면 심지어 진술을 하거나 조사를 받을 이유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해지목인이라는 이유로 어째서 이들의 진술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없는 겁니까?

 

정**이 피해자인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다함께(현 노동자연대) 행사에서 일어난 일이니 증인이 모두 다함께 회원인 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노동자연대라는 이름이 오멘의 666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진술하는 사람이 노동자연대 회원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대책위는 그 사람의 진술을 의심해왔습니다. 가해단체로 지목당했기 때문이라면 지목당한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재판을 했습니다.

 

대책위 분들은 아시겠지만 재판을 미루고 대화를 요청했음에도 대책위는 저희의 사건에 대한 상과 입장이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고 소를 취하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화해권고를 저희는 받아들였지만 대책위는 거부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상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 더욱이 가해지목인의 진술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체 어떻게 믿고 소를 취하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재판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나마 말씀하시는 ‘법정’은 대책위 여러분과 다르게 ‘가해지목인’의 진술도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법정은 가해지목인의 진술을 들으므로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셨습니다. 

 

그냥 입을 다물고 있거나 억울하면 죽으라는 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법원이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한 번도 판단의 절차를 가져 본 적이 없는 대책위가 무엇을 근거로 법원의 판단을 비방할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의 증언을 부당하게 의심해선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증언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왜 이 수많은 증언들을 부당하게 의심해야만 하는 겁니까.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 마음 속에 정해놓고, 다른 모든 정황들을 부정하여 그 ‘진실’에 꿰어맞추는 것이 정말로 진실을 추구하는 태도일까요. 아니면 정**가 자기가 생각지 않는 사실을 허위자백하면 그제서야 그것이 진실이라며 만족하시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전 류한수진 씨의 입장에서도 봅니다.

 

 

류한수진의 입장에 대해

 

저는 처음에 ㄱ씨의 동의 하에 포르노를 보여줬다면 이 사건을 성폭력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고민하였습니다. 2년 가까이 시간이 지나서 판결이 나오기 직전에서야 원 사건을 성폭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설령 ㄱ씨가 매우 강력한 동의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은 성폭력이었습니다. 절대로 포르노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ㄱ씨의 진술을 따라간다면 강제로 보여준 것이니 성폭력이며, 정**와 이**의 진술을 따라간다고 해도 유사 성매매를 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밝힌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어 그 결심을 철회할 목적으로 포르노를 보여주고자 했으므로 성폭력이었습니다.

 

최근 ㄱ씨의 이전 대리인이었던 류한수진 씨의 입장서를 여러 가지로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특히 왜 ‘다함께’에게 해결을 요청하게 되었는지, 다함께의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다함께 내부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 방식을 제안하고 주장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건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저는 여전히 의아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냥 타협했습니다. 당시에는 ‘가해단체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주체적으로 꾸릴 수 없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타당하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가해지목인에게는 소명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냐’는 제 항변은 저 이야기와 동시에 놓아두면 모순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가해지목인이 억울하다면 주체적으로 그 억울함을 풀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해지목단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더욱이 단체라서 곤란하다면 양측의 당사자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제 3의 위원을 위촉하여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거기까지 생각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은 분명한 불찰입니다. 타협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다함께 협의회 기간 동안 글을 발표하면서 당시의 대처에 대해 반성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단체 내의 회원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이미 ‘노동자연대’나 ‘대책위’ 등이 일부 공개했으므로 당시 글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서 공개적으로 사건을 처리하거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단체 차원에서 공신력이 있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요청하여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또한 공개적으로 우리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건의 진행상황을 알려야 했다.”

 

이서영 - 2014 노동자연대다함께협의회자료집 <페미니즘에 대한 엘리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중


 

“만약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이었다면 나는 그동안 우리 단체가 그랬듯이 신속히 조사하고 사실이 밝혀지는 즉시 제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이 그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조직적으로 나서서 처리해야 할 사안도 아니라고 봤다. 당사자가 소송이나 진실 규명 작업으로 해결할 문제였다.”

 

최미진 - 2014 노동자연대다함께협의회자료집 <한 성추문 사건에 대한 이서영 동지의 글을 읽고> 중


 

위의 맥락들을 고려해 류한수진 씨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 글은 여전히 의문점이 많습니다.

 

 

“피해자의 말이 거짓이고 정**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 정도만 해도 문제는 있는 것이다. 노동자연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성폭력 현장을 보고도 방조하는 것은 성폭력 가해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다.”


 

위의 문장은 류한수진 씨의 페이스북 글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를 보면 류한수진 씨는 판결문이 나온 것과 별개로 사건 자체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지금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신중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어긋나는 진술을 규합해보려는 어떤 시도도 운동사회 내부에선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렇듯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계시는 분이 사건 초기에 했던 대응은 그야말로 막막한 수준이었습니다. 지금 류한수진 씨가 보이는 태도의 전환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렇다면 이전의 태도에 대해 취하셔야 할 입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건 폭로 당시 시립대학교 교지편집장이었던 조윤호 씨는 이**의 사과문을 류한수진 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항의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한 적이 있습니다. 이**의 사건 진술이 ㄱ씨의 사건 진술과 어긋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사건을 보고 정**은 더욱 이 사건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소명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크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대책위의 입장서도 그 생각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지금껏 저희가 해 온 주장은 아무 것도 반영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반영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그 주장의 존재가 신중하게 다뤄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사과문을 썼으나 그 사과문을 인정받지 못한 이**는 최근까지도 무슨 활동만 하려고 하면 ‘제대로 사건에 대한 해결을 하라’는 요구를 맞닥뜨립니다. 그러나 이**이 해결을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해결이 가로막혔을 뿐입니다.

 

ㄱ씨는 이**의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없이 어떻게 이**의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확증할 수 있습니까? 사건 장소에 함께 있던 정**는 이**의 진술에 동의합니다. 이 모든 진술들을 류한수진 씨가 무시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지금껏 취해왔던 입장들에 대해 아무런 커멘트도 없이 논평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이 입장에서 대책위의 입장과 류한수진 씨의 입장을 동일하게 보아야 하는지 아닌지 저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정**는 재판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그러나 이 사건을 전후해 만나본 많은 여성주의자 동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나 반성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반성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여성주의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는 서술을 한 바가 있습니다. 저는 이 입장을 확고하게 지지합니다. 그러므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어느 한 쪽을 매도하거나 질타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입장에 대해

 

위에서도 언급한 일이지만 저는 노동자연대다함께(현 노동자연대)에서 활동할 당시 단체 내부에서 진상조사규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고, 결국엔 타협했습니다. 그 지점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저 재판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가능하면, 운동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요. 그때 저는 노동자연대가 이 사건에 대해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지만 몇 번 제기하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평가해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여전히 노동자연대다함께가 공식적 진상조사를 수행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당시 운영위원이었던 정병호 씨에게 중앙이 공식적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공식적 발표를 하며 대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앙의 답변은 ‘개인들끼리의 문제’이므로 중앙이 공식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부 뉴스레터에 사건의 추이를 공개해주기를 요청했지만 굳이 회원들이 ‘개인의 문제까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대답만을 들었습니다.

 

단체 내에서 내부적으로 이것이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도 있으며,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폭로된 사건이라면 단체는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그 사건과 연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단체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단체의 해명을 기다리게 됩니다.

 

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 중앙은 ‘가해단체’이기 때문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제게 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실제로 그 이야기를 하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지 않는 맥락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공신력 있는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제안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해단체’라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릴 수 없다고 했던 노동자연대다함께는 정**의 탈퇴가 예상되자 분쟁과규율조정위원회를 열어 정**에게 경고 조치를 했습니다. 이 간극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지금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2014년 노동자연대다함께협의회자료집에 피해호소인의 페북 담벼락에 벌어지는 댓글 테러를 막기 위해서 우리는 반성폭력 교육을 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자, 당시 운영위원이었던 최미진 씨는 이런 내용의 대답을 주셨습니다.

 

 

“A(ㄱ씨)가 아무리 온라인에서 우리 단체를 부당하게 공격했을지라도 개인의 연애사나 우울증 등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불특정다수가 보는 온라인에 폭로하는 행위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연민조차 없는 분별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 행동은 종파주의자들이 우리 단체와 B(정**)를 공격하기 좋은 빌미를 줬고 우리 단체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서영은 정병호의 실수가 마치 단체 전체의 문제인 양 치환한다. 우리 단체에 반성폭력 교육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정병호는 운영위원회를 대표해 그렇게 행동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운영위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 정병호의 실수는 어디까지나 당시 그의 온라인 세계에 대한 과대평가와 무분별함 때문이었다.“

 

최미진, 위의 글


 

 

운영위원회 전체의 실수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이 모두 단체로 대표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운영위원은 분명히 선출된 사람이며, 단체의 대표성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운영위원회 수준에서 한 운영위원이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대체 왜 사과할 수 없는 것입니까. 당시 노동자연대다함께는 운영위원회의 상호 협조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 운영위원회를 팀으로 선출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팀으로 선출된 운영위원의 실수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운영위원회 전체의 실수가 아니’라는 명목으로 회피될 수 있는 것입니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징계하고 혹은 교육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최근 노동자연대가 발표한 입장에서 노동자연대는 ‘정아무(정**)는 다함께가 사태를 냉정하게 파악하려 하면서 자신을 편들지 않자 불만을 품었고, 징계를 받은 직후 단체를 탈퇴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다함께의 규율과분쟁조정위원회(이하 규분위)에서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것은 정**가 탈퇴를 결심하기 반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당시 규분위는 조사를 했으나 판결을 내리지는 않은 상태였고, 규분의 조사와는 완전히 별개로 정**은 단체 내에서 나름의 할 수 있는 역할을 맡으며 활동해왔습니다. 이후 정**가 전지윤을 방어하는 분파에 가담한 것은 오롯이 정치적 이견의 문제였습니다. 분파 결성 당시는 정**도 당시 다함께의 다수파도 이 사건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협의회 자료집에서도 이 사건은 주로 저와 최미진 씨 사이의 공방으로 오갔습니다.

 

오히려 정**가 탈퇴할 전망이 예상되자 당시 다함께 규분위는 급작스럽게 조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정**가 탈퇴서를 제출한 이후에야 징계를 내렸습니다. 오히려 정**는 탈퇴 의사를 밝히고도 탈퇴가 계류된 상태로 규분위의 처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2월 27일에 노동자연대 규율및분쟁조정위원회가 정**에게 보낸 메일에는 이 내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오늘 낮 집단 탈퇴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 회원은 현재 규율및분쟁조정위원회의 조사에 계류되어 있으므로 최종 평결이 나기전에는 탈퇴 처리가 불가합니다. 규율및분쟁조정위원회의 평결이 결정되고 이를 통고 받은 후에야 본인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평결이 결정되고 나서 정**는 규분위의 급작스러운 징계에 정신적·정치적으로 탈력하여 다시 탈퇴 의사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정**는 이번 노동자연대의 성명서를 보고서야 자신이 제대로 탈퇴처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노동자연대는 이렇게 정파적으로 정**를 궁지로 몰아갔는데, 노동자연대가 분열했다는 사실도 아는 대책위는 노동자연대가 정파적으로 정**의 무고를 증명하려고 증인을 날조했다고 주장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참담한 심정이 듭니다.

 

 

전지윤의 입장에 대해

 

11월 27일 [변혁재장전] 블로그에 달린 ‘의견입니다’ 님의 댓글에 단 전지윤 씨의 댓글을 보고 저는 첫째로 불쾌했으며, 둘째로 기가 막혔습니다. 그의 글에 대해 전지윤 씨는 ‘피해호소인과 반대편에 서서 다함께 동지들의 꼬리자르기와 책임 회피를 변호하시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라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피해호소인은 당연히 ㄱ씨겠지요. 정**가 피해호소를 했다는 사실은 지금 전지윤 씨에게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지윤 씨는 피해호소인의 ‘반대편’에 서 있지 않은 모양입니다. ‘반대편’이라는 말은 이쪽과 저쪽을 명확하게 가르는 말입니다. A 혹은 B로 상황을 구분해버리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피해호소인 ㄱ씨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노동자연대입니까?

저희입니까?

원 가해자로 지목된 이** 씨입니까?

사건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류한수진 씨입니까?

저와는 약간 결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 초기 정**의 대리인을 맡았던 Duckling Hyeon 씨입니까?

 

전지윤 씨가 몇 번에 걸쳐 발표한 입장의 논지는 매우 단순합니다. <다함께는 재판에 가라고 강요했고,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했으며, 그런 상황 속에서 ㄱ씨와 정**이 희생되었다>. 정**은 전지윤 씨와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몇 번씩이나 재판에 간 것은 자신의 의지였다고 강조했으며, 자신은 ㄱ씨와 사건의 상이 다르다고 이야기했음에도 그런 토론 결과는 전지윤 씨의 입장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전지윤 씨의 글에는 단 하나의 대립각만 있을 뿐입니다.

 

노동자연대와 대책위.


그 안에서 노동자연대의 입장도 아니고 대책위의 입장도 아닌 저희는 도무지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전지윤 씨 입장에서도 저 구도에 저희를 넣기 위해선 그저 ‘다함께의 악행에 희생된 사람들’ 같은 방식으로밖에 표현하실 수 없으실 것입니다. 저희의 주체적 의지는 이 글 속에서 완전히 거세되어 있고, 이 글을 읽고 보면 저희는 마치 내부적 운동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그저 급류에 떠밀려 가는 나무토막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이상수 씨는 “포르노를 보는 행위를 방조했다고 인정하면 그녀가 저지른 성추행 사건은 책임지고 해결해주겠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이 오랫동안 제 뒷골을 잡아당깁니다. 정**는 그걸 거부했고, 저는 그 거부가 옳다고 여겼습니다. 성폭력 사건은 조건절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걸 인정하면 저걸 해결해주겠다는 식으로 거래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ㄱ씨가 주장한 행위는 정**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사실과 그가 기억하는 사실이 다를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의 기억이 이렇게까지 묵살되어선 안 됩니다.

 

저는 이 글의 초반에 ‘진실’이란 단어의 다면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사건을 단순하게 축소시켜서 선전을 하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면 그런 식의 태도가 과연 적절할까요. 심지어 전지윤 씨는 이 사건에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서, 대책위에서 계속 ‘진술이 어긋나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음에도 진술이 어긋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함께 지도부’가 문제였다는 이야기만 축음기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기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노동자연대와도 대책위와도 결이 다른 목소리입니다. 눈에 들보 같은 노동자연대 때문에 잘 안 보이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계속해서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고, ㄱ씨에 의한 성추행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체도 아니고 저희에게 항의서한을 보내도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엄연한 사건의 당사자입니다. 정말로 사건을 해결하고 싶다면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저희의 이야기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저와 정**는 전지윤 씨와 몇 개월간 토론을 해 왔기에 그의 입장에 재판으로밖에 갈 수 없었던 정**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서술되어 있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전지윤 씨가 재판에 대해서 한 이야기라고는 오로지 ‘다함께가 재판에 가라고 종용했다’ 뿐입니다. 아니오, 다함께가 재판에 가라고 종용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정**에게 재판 외의 다른 길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소장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할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전지윤 씨가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비판적으로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재판 외의 다른 대안을 찾기 힘들었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채 재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노동자연대는 당사자들의 사건이라고만 이야기하고 공식적인 행동은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계속해서 인터넷을 통한 음해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고, 정**가 활동가로서 가지고 있던 명예라는 건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떨어졌습니다. 전지윤 씨도 당시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시니까 아셨겠지요. 대체 그때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반성의 의사를 표하셨지만, 반성의 진정한 의미는 일면밖에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듣지 않았던 것’만 반성하시고 바로잡으시려고 하실 게 아니라 그 당시 ‘이것 밖에 길이 없었던’ 사람의 상황도 보셨어야지요. 그리고 지금도 제 눈에는 이것 말고는 길이 없습니다.

 

대책위원회는 ‘법원은 가해자의 진술도 신뢰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저런 말을 하는 대책위를 신뢰해야 할까요? 대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재판을 그만두라고 굉장히 강력하고 끈질기게 당사자가 자신의 요구가 거부당한다고 느낄 만큼 ‘설득’하실 때, 대책위를 신뢰하도록 할 수 있다고 저희한테 얘기하셨지요. 재판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저희가 대책위를 신뢰하건 말건 상관없어지신 것입니까?

 

전지윤 씨가 이중적으로 행동하고 계신 건 그뿐이 아닙니다. 

 

대책위가 입장을 낸지 한참이 지났지만, 전지윤 씨는 대책위의 입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입장을 내신 적이 없습니다. ㄱ씨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무게를 두고 고민하고 계시지만, 정**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피해의 경중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가요?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가해의 경중은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분명할 텐데요.

 

전지윤씨는 증인들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가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지윤씨의 근거없는 ‘가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설령 그렇게 가정하신다고 하더라도 그 증언들을 그냥 ‘없는 것’으로 치부하시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증언을 부당하게 의심해서는 안 된다면서요.

 

전지윤 씨의 사고 틀 안에서 ㄱ씨의 피해호소에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용됩니다. 하지만 정**이 전지윤 씨와 토론을 하면서 (심지어 자신의 피해를 주장할 때 조차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사건을 넓게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넓게 보면 뭐가 보입니까? 

 

전지윤 씨의 눈에는 노동자연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대신 정**이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남산 전망대 위에 올라가서 한강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보이겠습니까. 저희는 전지윤 씨의 이 관점이 제가 처음 링크했던 기사에 아주 훌륭하게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판결문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도 않지만 ‘성매매를 했다고 정**이 말했다’는 피해자(ㄱ씨) 중심주의입니다. 이 피해자 중심주의는 온전한 피해자 중심주의도 아닙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정**이 당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허위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걸 아주 작게 다루고 있는 점도 그렇습니다.

 

아, 정정하겠습니다. 그래도 이 기사는 정**가 당했다는 성폭력에 대해서 언급은 하고 있습니다. 전지윤 씨의 글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상황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서사도 복잡할뿐더러 진술도 어긋나고 확인해봐야 할 지점이 아주 많죠. 그 중에서 우리가 확인해 온 것은 한두 개에 불과합니다. 물론 전지윤 씨한테는 그 한두 개가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이실 것입니다. 아니, 사실 사건 전체처럼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건 무엇을 위해서 필요하죠? ㄱ씨나 정**처럼 상처받는 사람이 더 없도록 하기 위해서, 운동사회 안에서 이런 종류의 일들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저는 이제 누구를 신뢰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책위는 자신들만의 진실이 확고하여 우리와 대화할 필요가 없는 것 같고, 노동자연대는 징계에 반발하여 정**가 탈퇴했다고 하며, 류한수진 씨는 사건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전지윤 씨는 ㄱ씨와 정**씨를 대하는 태도가 그야말로 이중적입니다. 마지막에는 정**씨가 화해권고를 받아들이고 대책위 측에서 거부했는데도,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네요.

 

전지윤 씨는 지금껏 운영위원을 하면서 자신이 이 사건에 대해서 회피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오.

 

여전히 회피하고 계십니다. 심지어 당사자 중 한 쪽은 완전히 무시하시면서요.

 


 

 

저와 정**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화가 필요하다고 지금껏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쯤 되니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그저 억울함을 호소하던 사람, 피해를 호소하던 사람이 입을 다물고 알아서 그 바닥을 떠나는 일반적이고도 평화로운 결말을 기다리시는 것일까요. 그런 여러분께 이런 이야기는 너무 불편한 이야기입니까. 오히려 저는 전지윤 씨 및 변혁재장전 · 노동자연대 · 대책위원회 · 류한수진 씨 모두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을 판단하고 입장을 내고 있다고 봅니다. 그 가운데 진실을 바로세울 기회는 영영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아무도 관심없을 신해철에 대한 잡감 오늘 날씨

글이라는 것도 쓸 수록 에너지가 딸리는 것이라, 최근에는 웬만하면 소설 외에 다른 글에 힘을 들이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탓도 있고. 하지만 나는 이따가 신해철의 장례식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은 시간이 조금 남으니까 A4용지 한두 장 정도의 에너지는 소모해도 괜찮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의 중학생에게 세상은 부조리해 보였다. 뭐 2000년대 말반의 중학생이든 1990년대의 중학생이든 1960년대의 중학생이든 하여간 중학생에게는 원래 세상이 부조리해 보이는 거 같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그랬다. 과거 그 시절을 추억하는 꼰대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금 덧붙이자면, 2014년의 중학생보다 2000년대 초반의 중학생은 조금 더 '신나게'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2000년대 초반의 딴지일보를 기억한다. 남로당에서 파는 '명랑완구'들을 숨죽이며 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최근 레드홀릭스라는 사이트가 자꾸 내 피드에 뜨던데, 볼 때마다 그 당시의 남로당이 생각나서 괜히 친숙하게 느껴지더라) 안티 조선 운동이 있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행진하는 영페미니스트들도 있었다. 모든 층위를 같이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세계가 중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었다.
 
김대중 정권이었다. 1999년에는 전교조가 합법화되었고 2000년에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했고 선거에 나왔다. 김대중은 일본 문화를 전면 개방했다. 나는 X-Japan의 인스트루멘탈 버전 테이프를 사면서 감격에 겨워했다. 늘어나도록 들었다. 안양 1번가 지하상가에서 클램프의 일러스트 엽서들을 사던 와중에 신해철도 있었고 고스트스테이션도 있었다.
 
신해철을 처음 인지했던 건 초등학교 때 가요 프로그램에 나온 신해철이 에반게리온의 제레 같은 복장을 하고 가면을 깨부수면서 라젠카 세이브어스를 부르던 장면이었다. 지금 보면 저의 손발을 구해주세요 싶겠지만 그때는 매료됐었다. 나는 어차피 나보다 윗세대들이 신해철을 어떻게 소비했는지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나는 2000년대의 신해철을 기억한다. 어쩌다가 어느 새벽 두 시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번째로 신해철을 인지했던 건 어느 새벽 두 시였다. 윈앰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었고, cafe24로 채팅을 하던 시절이었다.
 
신해철이 소개시켜주던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워했고, 노래방에 가면 신해철 노래를 불렀고(주여, 제 친구들이 지누션의 A-Yo를 부르는데 제가 옆에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부르며 제 노래에 감격해 눈물을 그렁거렸습니다. 시발…), 신해철을 마왕이라고 부르면서 그게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그런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중요했던 건 좀 다른 것들이었다.
 
학원에서 내 친구들은 학원 화장실에 제대로 숨기지 않은 생리대가 버려져 있다고 누군지 모를 그 '여자도 아닌' 애를 욕했다. 남자애들이랑 잘 노는 여자애들 뒤에서는 걸레라고 욕했다. 하복 안에 색깔 있는 브래지어를 하고 온 여자애가 천박하다고 욕했다. 일진 여자애 한 명이 임신으로 퇴학한 거라는 소문이 퍼졌을 때는 너도 나도 신이 나서 정숙하지 못한 그녀를 비난했다. 그러면서 브리트니의 I'm a slave 4 u가 나왔을 때는 소곤소곤 그 뮤직비디오 봤어? 장난 아니더라. 완전 그냥 실제로 하는 거 아냐? 물론 그리고 나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비난했다.
 
평범한 사회화의 과정이었다. 네다섯 살 여자아이들이 공주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듯이, 열네다섯 살 여자아이들은 '소녀'의 룰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그래봤자 텔레비전에서는 베이비복스가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같은 소리를 했고 소녀들은 장기자랑에 나가서 춤을 췄다. 우리 모두가 혼란스러웠고, 나는 내가 이전의 시대를 살아왔던 여성들보다 훨씬 격동적인 삶을 살 거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그 즈음에 신해철이 있었다.
 
새벽 2시마다 '나는 너의 숨겨진 어두운 꿈을 지배(오버액션맨!)'한다던 그 '마왕'은 교복 페티시를 얘기하고 영숙이와의 섹스를 얘기했다. 꼰대질하는 어른들에 대해서 씹어뱉었고 별 체계도 없이 반권위적인 말들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그 반권위는 왕따 오타쿠 중학교 2학년이 설레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정서로서 존재하는, 아니 직관으로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불신. 신해철은 그 불신이 용인되는 범주와 용인되지 않는 범주를 체계 없이 오가면서 사람들에게 '반권위자'로서의 자부심을 제공했다.
 
애들을 때리면 안 돼,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돼, 꼰대들은 나빠,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살 권리가 있어, 절대로 너희들이 시키는 대로 안 할 거야.
 
딱히 신해철은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뭘 주창한 것도 아니다. 사회운동을 만든 것도 아니다. 심지어 그가 실제로 자기가 얘기하던 방식의 삶을 살았는지 아닌지도 지금에 와서는 나한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게 다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나는 선출되지 않은 권위를 의심하는 인간으로 자라났고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왕’을 비웃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짜장면에 계란을 넣자면서 중국집에 전화를 돌리는 쓸데없는 일도 있었고 홍대에 모여 앉아서 조리퐁을 세는 정신나간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는 쓸데없는 일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다르게 말하면 집단의 힘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던 시대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정치적이기에 나는 신해철이 딱히 ‘정치적’이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시대 위에 신해철이 타고 있었다. 신해철과 함께 뭘 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다".
 
지금 다시 신해철을 떠올렸을 때 손발이 오그라붙는 건 반권위를 말하는 주제에 유치하게도 가오가 쩔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오라는 게 참 힘든 게, 대부분 진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힘든 것처럼. 인간의 맨얼굴은 사실 꽤 과장되어 있는 면도 있는데, 이제 우리는 그 과장된 얼굴을 보이는 게 너무 부끄럽다. 나는 얼마 전에는 노래방에서 Here I stand for you를 부르면서 폭소를 터뜨렸다.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는다니 세상에! 과장된 맨얼굴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싶은 사람은 가끔 엄청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신해철은 분명히 유희적이었지만 동시에 자기 진정성을 오버해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큰 나머지 이것저것 무리수 투성이였다. 덕분에 신해철을 좋아하던 나까지 무리수 투성이였다.
 
최근 단골 우동집 아저씨에게 블루 하츠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이건 신해철을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나이프를 들고 달렸어’,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아이만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외쳐주겠어, 임금님은 벌거벗었잖아’, ‘약한 놈들이 더 약한 놈들을 때리네’, ‘보이지 않는 자유가 필요해서 보이지 않는 총을 휘갈겨’. 진심의 직구는 말로 하고 나면 얼굴이 빨개진다.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같은 말들처럼.
 
나는 이제 신해철을 마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좀 부끄럽다. 진심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그래도 아직까지 블루 하츠가 좋은 걸 보면 어쨌든 인간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덕분에 나는 이서영이 되어 있다. 이상한 시간들이었다. 
 
나도 안다. 아마 오늘 저녁 내가 빈소에 찾아갔을 때 그가 기적처럼 냉동고에서 눈을 떠서 내가 지옥에서 돌아왔다며 고스트스테이션 주제가를 불러 제껴도 나는 다시 그를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메모


* '사법적' 행위는 언제나 관심을 끌어왔고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 법 장치와 위법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과 자세(이들은 언제나 불신에 차 있었고, 이 때문에 사립 탐정이나 아마추어 탐정의 인기가 치솟았다)는 여러 방식으로 변화했거나 적어도 다양하게 윤색되었다. 위대한 범죄자는 법 장치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표현되는 때가 많았고, '진정한' 법의 대표자로 나타나기까지 했다.

*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자베르는 대중적 심리의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로운 인물 유형이다. 자베르는 '진정한 법'의 관점에서 잘못을 저질렀지만, 위고는 그를 동정적으로 묘사하여 '추상적' 의무에 충실한 '인격자'로 추어올렸다. 아마도 자베르에게서 경찰관이 '존경스러울' 수 있는 전통이 생긴 것 같다.

* 문제는 이것이다. 범죄소설은 왜 인기를 누리는가? 그것은 비예술적인 문학이 왜 인기를 누리는가 하는 더 일반적인 문제의 특수한 양상인가? 범죄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실질적이고 문화적인(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반적인 대답은, 대략적인 한계가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주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인 문학이 인기를 얻는 것도 역시 실질적이고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인가?

* 처음부터 미적 감정 때문에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관객이 흥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 중 미적인 감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가장 적다. 다른 요소들 대부분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상적인 것, 예를 들면 '성적 유혹' 같은 것이다. 문학 대본은 어렵지 않아야 하고 심리적인 탐구는 배제되어야 한다. 표현된 정열은 가장 근원적으로 '인간적'이고 직접 경험한 것(복수, 명예, 모성애 등)이라는 의미에서 '기초적이고 대중적'이어야 한다.

* 인간의 활동이 언제나 테일러화되어 있었고 엄격하게 규율화되어왔다는 사실. 또 인간은 자신을 짓누르는, 실재하는 조직화의 협소한 한계로부터 꿈과 환상을 통해 탈주하고자 해왔다는 사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창조한 가장 큰 모험, 가장 큰 유토피아, 가장 위대한 '종교'는 '현세'에서 탈주하는 길이 아니겠는가?

* 문제는 모험의 쇠진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과도한 모험성, 즉 실존의 과도한 불확정성에 있다. 그러한 불확정성에 맞서는 개인적인 방어책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로운 주도권에 따라 '추하고' 불쾌한 모험을 거부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 때, '멋지고' 흥미로운 모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 자신을 우월하게 유지하는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받으려는 욕망,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의 개설을 고양하려는 욕망, 삶의 조건들에서 가능한 만큼보다 더 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알고자 하는 욕망

* 대중은 더욱더 프롤레타리아트가 되지만, 아직은 대중으로 남아 있다. 대중 스스로에게 내재하는 자발적인 재구성의 씨앗을 싹틔우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대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로 몰락하는 것은 아닐까?)

* 오늘날 대중 소설은 소위 유미주의자들의 문학으로 변한 문학에서 점점 더 분리되어간다. 대중에서 분리된 문학은 말라 죽는다. 정신적 생명을 박탈당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자존을 잃는다(문학이 대중에게서 멀어질 때 문학은 특권계급의 현상이 된다. 그러나 이는 대중의 더 큰 자존심을 동반한다.)

* 그리고 우리 주변에 대중의 부재가 점점 확산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 기근에 대한 해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심문을 당하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데도 압박을 받으며, 그로 인해 당연한 듯이 고통받는다. 거대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고, 공장 밖에 있는 지식인은 그 공장을 침입할 수 없는 무풍지대로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 연재 소설은 대중의 공상을 대체하는 (동시에 조장하는) 하나의 백일몽이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학자들이 백일몽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보자. 이 경우 대중의 공상은 (사회적) '열등감의 콤플렉스'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금지된 죄악을 저지를 사람들에 대한 형벌과 복수를 꿈꾸는 오랜 공상을 받쳐준다.

* 만초니가 볼 때 대중에게는 '내적인 삶'이 없으며 깊은 도덕적 개성도 없다ㅏ. 대중은 '동물'이며 만초니는 가톨릭 동물 보호 단체 같은 것이 취할 법한 자선의 마음으로 대중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 대중 독자가 대중 문학에 대해 갖는 가장 특징적인 태도들 중 하나는, 작가의 이름과 개성보다 주인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한 유형의 최초의 창시자[작가]는 자기 작품에서 주인공을 죽게 하지만, 이를 이어가는 '연재 작갇들'은 그 주인공을 다시 살려내 독자의 새로운 열광과 만족을 이끌어내고 주인공에게 주어져 있던 이미지를 새로운 내용으로 연장하면서 주인공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 유럽적 감수성은 낭만적 흐름을 이끌어낸 바 있다(이러한 사실은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비극의 대중성과 연결할 수 있다. 거기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 기저에 깔려 얽히는 열정들 - 질투, 부성애, 복수 등 - 은 본질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대중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 민속적인 것은 모든 측면에서, 다시 말해 '배타주의적'인 측면과 시대착오적인 측면과 보편적(적어도 유럽적) 특징이 결여된 계급의 측면에서 '지방적인 것'에 가까이 다가선다. 예를 들어 멜로드라마의 언어는 민속적이며, 마찬가지로 연재 소설의 기운을 받은 감성과 속물적 '몸짓들'도 민속적이다.

* 전기 소설은 우월한 문화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혹은 갖고 있다고 믿는 독자와, '지배 계급'과 국가의 주인이 되었다고 믿는 시골 그리고 도시의 소부르주아를 지향하는 것이다.

* 문학가는 반드시 정치가보다 세밀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전망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덜 '분파적'이어야 한다ㅏ. 그러나 '모순적'인 방식으로 그럴 필요가 있다. … 앞에서 본 문학 집단들이나 그들이 표현하는 조화들이 오히려 실제적일 수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것은 지적이고 도덕적인 개혁의 발전이 모든 사회 계층에서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유일한' 진보적 노선의 관점에 선다는 것은 커다란 오류다. 진보적인 흐름을 통할 때 모든 획득이 축적되고 그 모든 다른 새로운 획득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노선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가장' 진보적인 노선에서도 뒤처진 걸음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새로운 문학은 지적·도덕적 개혁의 표현이므로 새로운 문학이 동반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대중 문학ㅇ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 나타난다.

* 대중문학에서 '초인'이 당대 현실의 삶과 관습(소부르주아와 소지식인은 특히 그러한 낭만적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다. 낭만적 이미지는 그들의 아편이자 인공적인 파라다이스로서 당시 현실의 직접적인 삶의 불행과 속박과 대조된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백 년을 양으로 사느니 하루를 사자로 사는 것이 낫다." 이 격언은 어쩔 수 없이 양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얼마나 많은 양들이 이렇게 말했을까. "아! 내가 하루라도 그런 힘을 가졌으면!"

* '초인'의 대중적 특성에는 연극적이고 외적인, 다시말해 초인보다는 '프리마돈나' 식의 요소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것은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형식주의와 최고 계급이고자 하는, 특히 그렇게 기억되고 선언되기를 바라는 유아적 야망이다.
(이를테면 여성의 경우에는 엄청난 미녀. 아름다움이 자신을 우등한 계급으로 진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 미래파는 지식인들을 향한 대중적인 찬미의 양상이다.

* 타자를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와 가치를 지닌 자율적인 존재로 대할 때, 이를 통해 어느 한쪽이 중심 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변증법적인 고나계에 놓일 때 헤게모니의 창출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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