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도 그의 기이한 우주론에 대한 요정 이미지와 전승된 이야기 에 포함되었다. 푸셀리와는 달리, 그는 큰 스케일의 역사 회화에는 어떤 흥미도 없었고, 조각과 수채화 같은 매체로 일하는 걸 선호했다. 그는 기본적인 자연, 말하자면 “자연스러운 세계의 통치”(Damon에서 인용, 136)에서 요정들을 보았다. [오베론, 티타니아, 퍼크와 요정들의 춤](c. 1785)에서 보듯, 이 예술가에게 요정이란 자연의 숭배자로서, 물질적 땅에 대해 미사를 드리는 사람의 축소판으로 생각되었다. 블레이크는 “요정의 고리”, 다시 말해 자유로운 영혼의 춤을 주재하는 요정의 왕과 왕비를 그렸다. 그의 방식은 아주 작은 참가자들에 오로지 집중하고(평범한 사이즈의 인간과 비교하지 않고) 비현실적인 춤을 추도록 요정들에게 날개를 주는 푸셀리의 방식과는 달랐다.블레이크는 또한 요정에 대한 영국 가정의 대중적인 전승문학과 관련 맺었다. [고블린](c.1816-20)은 밀턴의 시 “쾌활한 사람”에서 시인이 동이 틀 무렵 요정의 행동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그 결과에 대한 대중의 믿음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한 은유(Butlin, I, 397)를 펜과 수채로 그려냈다. 로빈 굿펠로우, 다른 말로 느림보 친구는 그의 일들을 완성하고 난 후 아침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는 가정의 요정이다. 그 뒤에 복수의 요정들이 아침이 밝았는데도 침대에 있는 게으른 여성을 벌준다고 한다. 블레이크는 요정 신화에 대한 다른 참고를 포함했다 ; “ignus fatuus", 혹은 will-of-the-wisp(도깨비불)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는 바보같은 남자의 타락을 조종하고, 요정의 활동을 관장하여 시찰을 돌도록 퀸 맵(인간의 꿈을 지배한다는 요정)을 왕좌에 앉히고, 분리된 우유에서 푸딩의 일종을 만든다.(Briggs, 231, 341-343; 동시에 Adlard, 43) 푸셀리가 문학적인 분위기를 역사 회화에 넣을 곳에서, 블레이크는 미래의 예술가들이 요정 주제를 다룰 때 쓴 몸짓 언어의 도식과 창의적 사용의 규모에 대한 모델을 제공했다. 동시에 블레이크는 예술가들이 환상 예술의 시적 영감을 시각적 은유로 탐색하는 데에 영적인 대부가 되었다.
놀랍게도, 후기 낭만 시대는 요정 회화를 약간 중요한 작업으로 보았다. 헨리 싱글톤(1766-1839), 헨리 하워드(1769-1847), 프랭크 하워드(1805-66), 조슈아 크리스탈(1767-1847) 같은 예술가들은 작은 규모의 작업 전통을 이어갔다. 이 작업들은 작았지만 우세한 타입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동식물군의 세계와 아주 가깝게 연결된 블레이크와 푸셀리의 소수의 작품들을 통해 지속되었다. 요정 이야기의 더욱 생산적인 확장은 월터 스콧 경(1771-1832), 나단 드레이크(1766-1836), 토마스 크로프톤 크로커(1798-1854), 토마스 키이틀리(1789-1872)같은 민속학자들의 글에서 나왔다. 가장 중요하게, 제이콥과 윌리엄 그림의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민담(Kinder-und Hausmarchen)의 영어 번역이 1823년에 나타났다. 이 시, 연극, 옛날이야기, 요정이야기를 망라하는 빅토리안 시대의 다양한 콜렉션의 출판물은 요정 화가들과 삽화가들에게 셰익스피어적 전통에 대한 대안적 문학 소스를 제공했다.
아일랜드인 예술가인 프랜시스 댄비(1793-1861)와 스코틀랜드 예술가인 데이비드 스캇(1806-1849)은 낭만 시대 요정회화의 일반적 창의력 부족에 대한 두 가지 특별한 예외를 대표했다. 댄비는 스위스에 혼자 틀어박혀서 [한여름밤의 꿈](1832)속 장면의 수채화를 두가지 버전으로 그렸다. 작품은 블레이크적 단순함을 통해 달빛이 비추는 풍경을 창의적으로 규모를 사용하도록 유리하게 환기했다.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장면 속 요정의 활동을 엿듣는 듯한, 혹은 비밀스럽게 상연되는 이슬 젖은 원형극장 같은 환상을 제공했다. 반대로 스콧은 푸셀리의 연극조와 블레이크의 시적표현의 혼합물에 특유의 형이상학적 괴팍함을 접목했다. 그는 [아리엘과 캘리번](1837), [새벽에 도망치는 퍼크](1837) 등의요정 회화들에 의도적으로 비대칭적인 구성을 통해 회화적 서사를 만들었고, 혁신적으로 몸짓 언어와 표현을 사용했고, 억세게 그림 표면을 칠했다. 아무튼 댄비의 요정회화도 스콧의 요정회화도 즉각적인 효과 이상을 왕립 미술원과 런던 예술계에 미치지는 못했다. 환상풍경 회화의 그만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댄비의 [매혹의 섬](1825)과 [일출을 향한 나무 님프의 찬송]가(1845)는 학자계급 내부에선 은밀한 외면을 받았고 이에 반해 스콧은 절은 스코틀랜드 예술가 중에선 전설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분리된 생활을 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아일랜드 예술가 다니엘 맥클리스(1806-1870)의 작품은 더 많은 학계와 요정회화 사이에 더 성공할 수 있는 연결, 그리고 낭만 예술에서 빅토리안 예술로의 이동을 대표한다. 그는 요정 그림에서 그의 캐리어를 쌓을 수 있는 가능성을 빨리 깨달았다 ;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소묘는 토마스 크로프톤 크로커의 남아일랜드의 요정 전설과 옛날 이야기(1826) (Ormond, 28)를 W. H. 브룩이 판화로 만든 걸 그린 것이었다. 이 젊은 예술가는 1828년에 왕립 미술원에 진입했다. 1830년대 초, 그는 역사 요정 회화를 포함한 역사 장르 회화에 대한 특이한 해석으로 관심을 옮긴다. 그의 회화 [보틈의 각성](1832)는 인간으로 돌아오면서 불행하게 얼굴을 찡그린 보틈에 포커스를 맞춘다. 하지만 그는 위협적일 정도로 장난기 넘치는, 주인공의 머리 양편에 위치해서 당나귀 귀가 있던 자리를 시사하며 그의 짐승 같았던 자아의 변화에 대해 관객들에게 상기시키는 두 요정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맥클리스는 발작적으로 비추는 초자연적인 빛 속에서, 밤에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는 세부적인 서사 - 오베론과 티타니아의 화해 장면을 오른쪽 위 구석에, 독버섯을 둘러싼 요정의 고리 춤을 왼쪽 구석에 - 를 끼워넣었다. 이 예술가는 그만의 어두운 상상으로 꾸민 작업을 통해 헨리 푸셀리의 예시에 응답했다. 하지만 이 초기 작업은 어떤 언론의 비평도 받지 못했기에, 이후의 요정 회화에 대한 그 중요성을 측정할 수 없었다. 맥클리스는 이때 더욱 큰 비평과 대중적 성공을 [사과가 떨어지는 밤](1833)과 [바론 홀의 성탄](1838)과 같은 역사 장르 회화에서 찾았다.
맥클리스의 예술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소스는 게르만 메르헨 화가 모리츠 폰 슈빈트와 루드비히 슈노어 폰 카롤스펠트였다. 그들의 독일식 스타일은 초기의 작품 중 에드워드 불워리튼의 [라인의 순례자](1834)에 그린 “판과 요정”의 삽화에서 볼 수 있다. 성공한 이후 그는 40대 초반에 그리던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와 햄릿에서 프리드리히 데 라 모트 푸케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 [운디네](1843)를 통해 게르만적 “요정” 주제로 돌아왔다. 장면의 포커스는 운디네의 연인인 크리스천 기사 홀트브란트와 운디네의 아버지인 물의 요정 퀼레보른의 대치 가운데에서 화해시키려는 운디네의 반응에 맞춰져 있다. 작품 속에서 요정들은 동작에서 오직 지엽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있거나, 나뭇잎 뒤에 둘러싸여 소심하게 임박한 충돌을 경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빅토리아 여왕의 생일에 그녀의 남편인 부마 알버트가 환상 회화에 대한 분명한 지원을 표현하기 위해서, 또 영국 대중이 독일 문화에 대해 가지는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구매했다.
:: 저번엔 삽화 얘기가 많아서 만화 밸리로 보냈는데, 이번에는 역사 장르 회화 얘기가 많아서 역사 밸리로. 이거 뭐, 어디로 보내야 될지 도통 알 수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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